[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09.2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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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삶의 근원성과 존재성, 삶이 끝나고 난 어느 시점의 쓸쓸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다가도 되는 것인가, 많은 시간이 흐른 후 후회(後悔)와 참회(懺悔)로 나의 삶의 끝이 가득해지지는 않을까 등등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나의 인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토막을 내고 해부해보는 가을은 참으로 외롭고 쓸쓸하다.

타고난 아둔함도 있지만, 사십 여 년 넘게 책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데도 나는 학문의 본질보다는 껍데기만 핧고 있다.

2500년 전 공자께서 얘기했던 40에 不惑(불혹)하고, 50세에 知天命(지천명)하며, 60세에 耳順(이순)해야 한다는 것은 이번 생애에는 애시 당초 물 건너간 듯하다.

삶의 근원적인 것에 대해 해마다 묻고 또 물어도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어쩌다 막걸리나 한잔 걸치면 술기운을 빌어서 그런대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마음에 쏙 드는 하나의 현상에 꽂혔다. 그것은 나와 함께 ‘인생이라는 시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또는 자연이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아름답고 탐스런 꽃과 새와 나무들이 나와 함께 비슷한 생명의 시간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깊은 지식과 감성과 여유를 가진 스승과 선배, 멋과 끼를 듬뿍 가진 친구들과 후배, 사랑하는 가족과 어여쁜 손녀가 나와 함께 이 가을에 머무르고 있다.

그들과 함께 머무르다 어느 날, 동반해준 그들 속에서 그냥 떠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가을의 외로움을 다소나마 덜 수 있겠다 싶다.

섬진강의 김용택 시인도 가을이 오면 나처럼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외로워하고 있는 것 같다. <가을이다>는 산문에서 자작시 한편 "눈부신 해가 저물고 산그늘도 묻히는 가을해거름 들길,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온기를 느끼며, 그대가 가장 편하게 동행을 수락할 수 있는 하얀 풀꽃 한송이가 되어 외로움을 덜어보겠다" 했네요. 이번주 토요 시는 김용택의 <인생>이라는 산문집에 있는 가을에 관한 시 한편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사람의 온기(溫氣)가 더욱 그리워지는
가을해거름 들길에 나는 서 있습니다.

먼 들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 산그늘도 묻히면
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대 얼굴이 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

내 안의 그대처럼 꽃들은 쉬임없이 피어나고
내 밖의 그대처럼 풀벌레들은
세상의 산을 일으키며 웁니다.

한 계절의 모퉁이에 그대 다정(多情)하게 서 계시어
춥지 않아도 되니
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한지요.

지금 이대로 이 길을 걷고 싶고
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 하얀 풀꽃 한송이로 서고 싶어요.

테너 김성록의 <12월에 떠나가네>를 열 번도 넘게 들으면서...... 2019.9.28.6:15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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