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11.02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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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중 내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최초의 장면은 갑자기 집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웅성거렸던 거다. 또 이듬해 설엔가 순고 뒤 인재동 앞산 골짜기에 있는 묘지에서 엄니의 숨이 넘어갈 듯 목메어 우는 소리였다.

“생때같은 새끼들~ 셋 씩이나 나두고~~, 나 혼자 어찌 살라고~~, 아이고 아이고 못살 것다~, 나 죽것네~” 였다. 철이 조금 든 누나와 형은 같이 울었으나, 이제 막 네 살이 되는 나는 앞산 까끔까지 뛰어다니면 신나게 놀았다. 그 철없었던 죗값으로 어릴 땐 서러워서, 중학교 땐 배가 고파서, 고등학교/대학 때는 외로움도 문제지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으로 울었다.

어느 땐, 책상 위에 신문지 두어 장 깔아놓고 서너 시간 울면 신문지가 흥건히 젖기도 했다. 그 울음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이삼 년 만에 집을 사고 자식이 생기면서 싹- 없어졌다. 그래도 가끔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목이 메여오기도 한다.

눈물(tear drop)은 생리학에서 눈알 바깥 면의 위에 있는 눈물샘에서 늘 조금씩 나와서 눈을 축이거나 이물질을 씻어내는 분비물이라 한다. 하지만 악어의 눈물(위선, 거짓), 눈물 다이아몬드(최고가 보석), 아프리카의 눈물(아프리카인의 목숨과 피눈물), 눈물(역경) 속에 피는 꽃, 슬픔과 기쁨의 결집체(이집트, 뉴질랜드), 이시스의 눈물(자연의 재앙), 카타르시스(슬픔의 극복과 淨化) 등등 그 의미는 사뭇 다양하다.

김현승 시인은 그의 시 <눈물>에서 ‘신께서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지어주신 것’이라 했다.

끔찍이 사랑했던 어린 아들을 잃고 나서 애통해 하던 어느 날 문득, 눈물의 실체와 의미를 성찰하게 되었다 한다. 가슴 저미는 슬픔에 잠겨 살아가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 눈물을 준 것은 무엇일까. 슬픔의 심로(心勞)에서 더한 슬픔의 결정체를 던져줌으로써 슬픔을 벗어나라는 이비치비(以悲治悲)의 의미일까. 아니면 극한의 슬픔 속에서 인간의 숙명성(언제인지는 몰라도 누구든지 반드시 죽는 존재)과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과 겸손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대체로 눈물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처지에 따른 답답함, 막막함, 비참함으로 나오기도 하고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흘러내리기도 한다. 사는 게 너무 팍팍하고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세상 누구하나 자기 맘을 이해해주지도 못한다고 느낄 때 소리 없이 흐느끼기도 한다. 걸어왔던 시간 길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고 허무하다고 느낄 때 가슴에 맺히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한 눈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겠는가. 사랑과 웃음 가득한 양지(陽地)가 있다면, 사랑과 웃음 줄 끝에 이어져 보이질 않지만 동아줄처럼 모질고 질기게 달린 게 이별과 슬픔의 눈물방울이다. 우리들은 재미와 즐거움이 가득 찬 사랑보따리를 싸고 가슴이 푹-꺼질 만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사랑 보따리를 풀면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 보면 뿌듯하고 고마운 사람, 감사하는 마음이 포도송이처럼 영글어지는(grow ripe) 그런 사람과 가능한 많은 시간 길을 걸어가고 싶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만나고 지키기 위해 세상일을 허투루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은 참으로 야속한 장난꾸러기인 거 같다. 사람이 온통 사랑에 빠져 신의 존재조차도 망각할까 봐 그 사랑과 웃음 바로 뒷면에 눈물을 대롱대롱 달아 놓았다. 눈물은 너희들이 나를 잊으면 반드시 눈물구덩이에 빠트려 혼쭐을 내주겠다고 한 신(神)의 회초리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 ‘사랑이 빗물되어 말없이 흘러 내릴 때~~’라고 한 <바보같은 사나이> 노래에서 나오는 문구는 그저 통속(通俗)적이기만 한 유행가 가사라기보다 진리에 가깝다. 사랑하지 않으면 이별도 없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이별이 존재하게 되고 서럽고 아쉬운 눈물이 수돗물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 사랑한 사람도 없지만 눈물이 무서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천치나 바보가 아닐까.

산다는 것이 팍팍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고단할 때 눈물이 난다. 한 때는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사랑과의 이별 앞에 선다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런 이별 앞에서 가눌 수 없는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여와 한 마디 말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럴 때 시인 정호승은 다음과 같이 나직하게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구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전문, 시집(창비, 1999)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

살다보면 울음밖에 달리 어찌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가이(斝彛)없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잠시 잠깐 웃다가 그 후 오래 동안 서글피 울다 사라진 죽은 소나무 뿌리를 만나보면 그대만이 슬픔의 주인공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다간 것이니 너무 울지 말게. 우리의 인생살이가 눈물의 역사가 아닌가라고 다독거려준다.

천년의 바람결에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오면 비를 맞고 눈 오면 눈을 맞으며 서걱이는 목어(木魚)처럼 무념무상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는가. 너무 눈물로 어여쁜 얼굴을 범벅으로 만들지 말라고 토닥거리는 듯하다. 지위가 높던 낮던, 많이 배웠던 그렇지 않던, 잘 났고 돈이 많던 아니 그러든, 어차피 저마다의 시간 길이 끝나면 누우런 황톳(黃土)길을 걸어서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네. 그 땅 위에 풀과 그 무성한 잎들, 나무들, 그리고 새들까지 그대의 남겨진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의 영혼을 맑은 소리로 위무해줄 것이니 이제 그만 눈물을 그치라고 속삭이지 않는가. 슬픔이 강물처럼 넘쳐 눈물을 가눌 수 없다면 산물 맑고 정(情) 또한 눈물보다 더 촘촘한 선암사로 오라고 속삭이듯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를 가장 슬프게 눈물짓게 한 자리가 있다. 비교(比較)의 장(field))이다. 돈이 적어서 지위가 낮아서 가방끈이 짧아서 두뇌가 명석하지 못해서 키 작아서 못생겨서 병약해서 강남에 살지 못해서 뚱뚱해서 등등 비교의 세상은 눈물과 한숨의 세상이고 나를 수없이 무기력하게 만드는 슬픔의 세상이다.

높은 곳보다 낮은 데가 서있는 것보다 앉아있는 것이 참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고 평화롭기까지 하다. 빈부귀천이 없는 완전체의 수평 세상, 가장 낮아서 가장 평화롭고 안정스런 세상이다. 한 때나마 나의 살 점이였던 녀석과의 ‘쿵’하는 이별의 변주곡까지 들을 수 있다. 그곳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동처소인 해우소(뒷간) 아닌가. 사는게 서럽고 쓸쓸하고 외로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 그 뒷간에서 외쳐보자. “인생, 별거 아니여, 울 것 없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울 힘으로 재미나게 살아야지 뭐“...

우리들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좋아하는 그 사람과 금보다 값진 한정된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을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람이 나의 목숨 줄이고 눈물바다인 것도 알아야 한다. 작심하고 딸은 나무란 적이 없다. 그 녀석들이 나의 웃음 보따리지만 혹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절망의 늪에 있을 때 나 또한 무사하지 못 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사랑한 그 만큼 내 눈물과 슬픔의 구덩이는 깊고 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손녀를 보면 어떤 꽃보다 人꽃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저 녀석을 좋아하는 그만큼 지금 눈물구덩이를 또하나 깊고 길게 파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 녀석이 조금 더 늦게 철들어서 나에게 함부로 했으면 한다. 눈물구덩이가 무서우랴. 지금의 사랑이 더 중하지.

2019.11.2.7:00 강 길봉 드림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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