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11.09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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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물었더니 생명이라 하셨단다.

인간에게 물었더니 생명은 시간이 지나면 명멸(明滅) 하므로 생명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다시 존경받는 현자(賢者)에 물었더니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 했단다.

'권력이나 높은 지위 많은 돈 잘난 자식'이 사는 과정에서 눈부시게 화려한 겉옷이라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산다는 것은 따스한 속옷을 입는 것처럼 소중한 것이라는 얘기다.

속옷처럼 따신 그러한 사랑을 만나면 김영랑 시인은 “~~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바보스럽게 만드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라고 했고... 하지만 ”~~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라 했다(김영랑의 ’내 마음을 아실 이‘ 중). 즉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꿈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 했다.

지극히 자기를 사랑해주고 바보 같은 마음속의 혼란스러움과 삶의 쓸쓸함까지도 내보이며 함께 어루만지고 달래줄(慰撫, pacify) 그 사람을 만나 시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뭘 더 바랍니까. 사는 것이 그레이스(grace, 신의 은총)인데~~”라고 부러움 가득 찬 경의(敬意)를 표하고 싶다.

사랑의 이미지를 갖는 꽃은 허다하다. 그중 장미꽃은 잎도 무성하고 꽃도 크고 탐스럽고 어여쁘다. 여러 사람 사랑을 듬뿍 받고 웃으며 싱글벙글하며 사는 이미지를 느끼는 꽃이다. 하지만 나는 잎도 꽃도 무성한 장미꽃보다 상사화(相思花)가 더 좋다. 잎이 없거나 두서너 개 있고 목이 하얗고 긴 ’어여쁘고 쓸쓸한 꽃‘에게 마음이 더 간다. 혹 다음 생애가 있다면 어여쁘고 쓸쓸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우리들이 웃고 울며 만지고 보듬고 부비며 살아가는 사랑 열차는 몽환적 꿈의 세계(dreamland)에서 나 있을 법한 사랑과는 다르다.

사랑 열차의 승객들은 독특하고 다양한 감정과 생각, 감성과 생각의 깊이와 너비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감성과 생각의 다양성과 변화무쌍으로 인해 말과 행동도 복잡 다양하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사랑도 사람 간의 일이라 사랑 열차는 혼란스럽게 뒤뚱거려 어지럽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과 싸움은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 둘만이 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이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동네방네 시끌벅적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랑이라는 풀밭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싸움은 당/실(堂/室), 조/정(朝/廷), 안/팎(內/外)의 이분법에서 室/廷/內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의 싸움이 주고받음의 균형점(손해배상, 사죄와 용서 등)에서 타협이 되고 끝나고 그뿐이다. 사랑싸움은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다. 사랑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더 사랑받기 위해서 아니면 맑고 투명하며 은밀하기까지 한 사랑유리어항에 아주 작은 금(균열, crack in)이라도 갈까 염려와 조바심으로 안달이다.

어디까지나 사랑싸움은 어느 한 쪽의 희생(거리조정, 키스->포옹, 포옹->악수 등)과 용서와 情(용광로 같은 마음)로서만 끝나거나 잠정적 휴전상태로 남아 내일의 사랑싸움의 기폭제(catalyst)로 남는다. 흔히들 “잡은 고기는 더 이상 돌볼 필요가 없다”고 해서 농담으로 얘기한다. 잡혀 본 고기가 새롭고 참신한 고기를 잡는 방법을 경험적으로 터득해 한 수 위의 고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참으로 어리석은 주장이다.

사랑은 깊고 깊은 속옷이라서 찬기를 느끼지 않게끔 세심하게 살피고 지켜내야 한다. 잡은 고기 아니 잡혀준 고기에 눈빛을 고정시키는 ‘선택과 집중의 미’를 발휘해야만 한다. 사랑싸움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이름의 풀밭 위(only one grass cage named love)에서만 진행되어야 하고 싸움판(another cage)을 바꾸면 안 된다. 사랑싸움은 사랑을 위한 싸움이지 미움/증오로 가득 찬 헤어짐을 위한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사랑싸움의 규칙이다. 사랑싸움은 싸움에 이탈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그 거리에서 정착하고 또 원하는 거리를 눈여겨보고 맞추어가는 싸움일 뿐이다. 사랑싸움은 애시 당초 너와 나의 이탈에 대한 선택권의 반납을 전제로 한 다툼이다. 이탈의 선택권은 이미 종료된 연극 관람권에 불과하다.

이번 주 토요시 연재는 ‘사랑싸움’을 주제로 정했다. 소설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전개되는 얘기는 어설프고 설익은 말장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도현의 시집 <그대에게 가고 싶다>의 52편 시 중 ‘사랑은 싸우는 것’이라는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안 시인(1961~)은 경상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대학은 물론 생활과 교수직도 전라도가 주 무대인 시인이다. 특히 ‘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로 친숙한 시인이다.

안 시인의 <사랑은 싸우는 것>이라는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사랑은 싸우는 것   -안 도현-

 

내가 이 밤에 강물처럼 몸을 뒤척이는 것은

그대도 괴로워 잠을 못 이루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창밖에는 윙윙 바람이 울고

이 세상 어디에선가

나와 같이 후회하고 있을 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런 밤 어디쯤 어두운 골짜기에는

첫사랑 같은 눈도

한 겹 한 겹 내려 쌓이리라 믿으면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누우면

그대의 말씀 하나하나가 내 비어있는 가슴속에

서늘한 눈이 되어 쌓입니다

그대

사랑은 이렇게 싸우면서

시작되는 것인지요

싸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벅찬 감동을 그 사람 말고는 나누어 줄 길이 없어

오직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인 것을

사랑은 이렇게

두 몸을 눈물 나도록 하나로 칭칭 묶어세우기 위한

끝도 모를 싸움인 것을

이 밤에 깨우칩니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 것을

 

이 시를 시어(詩語)를 준거로 해석학의 시각에서 보려고 한다.

사랑싸움은 삼자의 개입 없이 ‘당신과 나’와의 싸움이다. 내가 사랑싸움으로 ‘이 밤 강물 뒤척이든 괴롭고 후회하듯 그대 또한 그런 줄’을 압니다.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듯(그림자 없는 본체는 유령이나 귀신) 사랑에도 그림자인 사랑싸움이 있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타인과는 절대 싸울 일이 없지요. 사랑에 그림자가 사랑싸움인 것은 알지만 싸움이 있을 때마다 그대가 나에게 던진 말과 글과 행동은 항상 내 가슴을 쥐어 패듯 ‘서늘한 눈(雪)처럼’ 시리고 아픕니다. 하지만 ‘바람도 울고 추은 이 세상’에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당신은 또 나를 얼마나 간절하게 사랑하는지, 그 따시고도 훈훈한 사랑의 속옷만이 내 생명줄이라는 것을 그대도 알고 있지요.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고설켜 뒤엉켜있든 그대와 나의 사랑 열차도 그래요. 몇 달 전처럼 아니 몇 주일 전이나 사나흘 후에도 우린 '끝도 모를 사랑싸움'을 하겠지요. 나는 다른 가치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요. 난 단지 천 길 물속 보다 더 깊고 깊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당신과의 사랑 그 하나만을 위해, "그 벅찬 감동을 당신 말고는 도저히 나누어 줄 길이 없어 오직 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우연이든 필연든지 가슴 아파도 싸울 것입니다.

겉옷을 갖기 위한 싸움은 세상을 파멸시키지만 사랑을 위한 속옷싸움(사랑싸움)은 따시고 오진 평화스러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지요. 사랑싸움으로 ;그만큼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고’ 평화로운 세상에 가까워진다는 것이지요.

절대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속 좁고 집착이 강한 나는 사랑싸움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했고 하고 있다. 시간과 한가로움이라는 거울에 나의 사랑싸움을 담가봤더니 그 원인의 팔 할은 나고 승률은 백전백패로 비춰진다. 그래도 나는 밥 숟가락 들 힘이 있을 때까지 사랑싸움을 할 것 같다. 사랑을 위하여!!

2019.11.9. 7:00 강길봉 드림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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