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11.23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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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사의 <토요 시 연재>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주된 얼개(framework)로 하고 윤 삼육의 <소장수>와 까뮤의 <오해>를 보조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이다.

하나님이 천사 미카(하)엘에게 “남편도 얼마 전에 죽고, 이제 막 쌍둥이 형제를 낳았는데 그 엄마의 목숨도 거둬오라.” 명령한다. 천사는 어머니 없이 아이들은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판단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노(怒)하여 천사를 사람 모습으로 변하게 하고 발가벗겨 세상에 보내며 세 가지 문제를 접하고 깨우치며 미소(微笑) 지을 때 다시 복귀시킨다고 약속한다. 주인공은 가난한 구두수선공 세몬, 그의 아내 마트료, 벌을 받고 내려온 천사 미카엘이다.‣‣

첫 번째 문제는 사람의 본성은 무엇인가이다. 즉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이다. 소설 속을 들여다보자.

가난한 세몬이 그 아내에게 따뜻한 겨울 외투를 만들어주기 위해 외상값을 받으러 갔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귀가하는 중, 길가 모퉁이에 있는 교회에서 발가벗은 채 떨고 있는 미카엘을 보게 된다. 처음엔 무서워 도망을 갔지만 불쌍한 마음이 들어 다시 다가가 자기 외투를 벗어서 입게 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낼 아침 먹을 빵밖에 없는데 손님까지 데려오고 식사까지 주라고 하니 아내 마트료는 처음에는 화를 낸다. 세몬이 설득하자 아내는 연민(憐愍)의 정을 느껴서 그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천사 미카엘은 무엇인가를 깨달고 미소(微笑)를 머금게 된다. 여타의 동물과는 달리 사람의 마음속에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情), 즉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대 만약 사람에게 사랑이 없거나 세속적인 것으로 인해 사랑이 매몰되었을 때는 어떻게 될까.

단편소설 <소장수>의 줄거리는 ‣‣‣ 주인공 소장수는 장사 수완 좋고 돈 잘 벌고 소처럼 힘이 쎄서 누구도 건들지를 못한다. 기고만장하고 인정머리라고는 털 끝 만큼도 없고 여자를 성 노리개 쯤으로 생각하는 막돼먹은 인간이다. 우연히 노름 돈을 꿔줬지만 받지 못하고 그 대신 그 집에서 잡일 해주고 밥 빌어먹고 사는 세상물정 모른 여자를 받게 된다. 그 후 그 여자를 데리고 여러 소전(우시장)을 돌아다니며 소를 사고팔고 그런 와중에 온갖 잡일은 물론 소도둑까지 시키고, 틈나는 대로 욕정(欲情)을 채우고, 실수로 사람까지 죽이는 파렴치한 일도 자행한다. 더군다나 노름 돈 때문에 자신의 애까지 벤 그 여자를 팔아넘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늙고 볼 장 다 본 사람이 되어 주막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 여자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그 여자는 오년 전 애를 낳고 얼마 후에 죽고 없었고, 낯선 할머니와 살고 있는 다섯 살 자기 딸을 만나게 된다. 딸의 투명하고 어여쁜 눈빛을 보며 눈물어린 회한에 잠긴다.

아마도 주인공은 “아 그 여자가 내 인생의 진정한 사랑이었구나.”라며 슬피 울었으리라 짐작해본다.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기 ‘입안의 혀’처럼 천생연분인 그런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살고 싶다. 신은 찰나를 살다가는 인간들이 불쌍해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짝을 만나게 해놓았을 것이다. 다만 자기도취에 빠져있거나 사랑보다 세속적 가치에 너무 얽혀있으면 진정한 사랑을 만났어도 주마등(走馬燈)처럼 지나칠 수밖에 없으리라.

두 번째 문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소설 속 관련 내용이다.

세몬의 집에서 구두수선기술을 배운 미카엘은 성실하게 일을 했고 집안에 도움을 주며 살고 있었다. 몇 년 후, 어느 부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왔고 그 중 한 아이는 다리를 절고 있어서 그 연유를 물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가 죽고 그 엄마마저 죽어 남겨진 고아였어요. 다리를 절개된 것은 그 엄마가 쓰러지며 다리를 덮쳤기 때문이다. 하도 불쌍해서 자기가 자식처럼 돌보며 지금까지 키웠다.”고 얘기했다.

부인의 얘기를 듣고 미카엘은 그 아이가 엄마 없이 도저히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어머니의 목숨을 거둬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던 것을 후회하며 두 번 째 미소(微笑)를 띠었다. “아하! 어떤 어려움에서도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 즉 사람은 경제적이든 사회 심리적이든 아니면 정치적이든 혼자의 노력으로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존재이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 타인을 만나 짧고도 긴 인연을 만들며 살아간다.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랑 때문이 아닌가 확대해석해 본다. 불쌍하고 어려운 이를 도와주는 마음, 궂은 일 마다 않고 손을 내밀고 좋은 일에 함께 웃는 의리, 친구나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고 다독여주는 따사로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조락(凋落)에 대한 짠~한 위로, 꽃이 서서히 시들어가듯 세월과 함께 녹아가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 이 모두가 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될 수 있게 하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사랑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대 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는 사랑 그 만큼 미움 또한 가득할까. 사랑이 신뢰와 희생을 먹고 자란다면 미움은 의심과 오해를 숙주삼아 독버섯처럼 번져간다. 까뮈(A. Camus)의 단편소설 <오해>를 통해 그 극단상황을 접근해 본다.

체코의 산골마을에서 어머니와 딸(마루타)이 운영하는 여인숙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산골마을에 안착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딸은 태양과 해변이 있는 먼 나라로 떠나기 위해서 큰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숙박인들을 죽여서 돈을 모아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20년 전 집을 나갔던 마르타의 오빠(얀)이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여인숙의 손님으로 왔다. 마르타와 어머니는 얀을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고 만다. 죽어가면서 얀은 “난 당신 아들이고 너의 오빠다”라고 외마디 외치고 죽었다.

어머니는 죄책감으로 자살을 하고 마르타는 어머니와 오빠를 원망하며 홀로 남게 된다.

손님을 자식이나 오빠로 알았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자식이자 오빠를 돈 많은 손님으로 잘못 인식했기에 생긴 극단적인 비극이다.

오해와 의심은 미움과 원한을 낳고 미움은 사랑의 파멸, 곧 죽음으로 가는 입구다. 오해와 의심은 왜 생기는가. 진정성 결여, 그리고 전문용어로 정보 지식의 비대칭성에 기인한다. 사랑을 측은지심 혹은 연민으로 인식했을 경우, 외형적으로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존재한다. 여기서 기본 법칙은 주는 자의 바른 마음과 받은 자의 감사함이다. 주는 자는 도와주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쁨과 자긍심, 받는 자는 받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고 감사함과 언젠가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깔려있어야 한다. 특히 주는 자는 주었던 것과 받는 자를 까맣게 잊어야 한다. 주는 것과 받는 자를 기억하고 자랑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오해와 의심이 생기는 또 하나의 원인은 서로에 대한 정보 지식의 비대칭성이다. “바다의 물이 마르면 밑이 보이나 사람은 죽어서도 그 마음을 볼 수 없어서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도 있다. 사람들은 본시 자기방어욕구가 강해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되면 된 만큼 함께 좀 더 많은 시간 길을 걸어가고 싶을 만큼 살아온 환경과 역사는 물론이고 욕구 감정 입장과 생각 등이 언어와 글과 행동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상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상대나 나에게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잊혀져야 할 베일'을 제외하고는 정중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긴요하다. 표현의 활성화로 서로 간의 정보와 지식이 균형적으로 되었을 때 오해와 의심은 줄이든다. 특히 의심과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행동과 생각과 말을 자제하거나 조심하는 것 또한 오해의 불소시게를 미연에 막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세 번째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락(부여)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미카엘이 세몬에게 구두수선공 일을 배우고 일을 한 지 일 년 후, 돈이 많고 덩치가 큰 신사가 고급 가죽을 가지고 와서 자기가 원하는 고풍스런 장화를 약속한 날자까지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약간 무시하듯 무례한 태도로 물었다. 세몬은 자신감도 없고 겁도 났지만 미카엘은 좋은 구두를 만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그 신사는 꼭 만들어 달라고 명령하듯 하면서 떠났다. 손님이 가자 미카엘은 웬일인지 몰라도 장화를 만들지 않고 슬리퍼를 만들었다. 세몬은 두려웠지만 미카엘을 믿고 기다렸는데, 얼마 후 신사의 하인이 신사가 돌아가다 넘어져 죽었으니 장화 대신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세몬과 눈이 마주치자 미카엘은 눈가와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미카엘은 사람은 그가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존재이고 언제 어떻게 죽을 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결정적인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그 중 하나는 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이다. 돈이 지배하지 않는 곳이 있을까. 종교도 돈이 지배할 가치가 없는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다. 이미 그냥 내버려둬도 돈 쪽으로 거의 자빠지고 있으니까. 사람의 내면세계는 어떤가. 편리성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지 오래전이라서 마음도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대부분 되었다. 돈이 지배하지 않는 유일한 영역은 딱 하나 있다. 무엇일까. 시간이다.

결국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인간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살아간다. 그 사랑이라는 최고의 가치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만 허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돈이니 집이니 옷이니 세속적인 것에 너무 현혹되어 목숨 걸어 명(命) 재촉하지 말고 서로 안타까워하고 애달파하며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삶, 올바른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을 지배하여 인간이 돈에 녹아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신도 손 놓은 듯하다. 하지만 인류는 시간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일 년이라는 시간 탱자나무 울타리가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고 있다.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난 봄의 설렘, 이삼일을 퍼부었던 장대비와 흙먼지 부연 마른 여름도 사랑처럼 피고 열기를 더 했다. 온갖 열매 과실들이 고개를 숙이며 ‘나 다 컸으니까 알아서 해라’식의 연노랑의 가을도 백여시처럼 꼬랑지를 흔들며 나 잡아보라고 꼬신다. 전남 보성 출신의 설명이 오히려 누(累)가 되는 시인이 있다. 문정희(1947~)시인의 <가을노트>를 읽고 암송하면서 그 사랑 다 떠나가고 보내고 겨울 강가에 겸연쩍은 듯 서서 겨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간 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부터 한참 동안 바라보며 지내야 할 것 같다.

사진 - 최길수
사진 - 최길수

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 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베고 난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으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사랑/시간의 부재(떠남)는 우수수 와르르 ~~ 모든 것을 떨게 하고 벗게 한다. 사랑이 떠나면 사랑이 지고 사랑이 진(사라진) 세상은 벼 베고 난 텅 빈 겨울 논의 볏단처럼 살점 없는 앙상한 뼈처럼 아득하고 쓸쓸하다. 세상에 온 이유가 오직 그대와의 은밀하고 조용한 비밀스런 사랑 하나 맺기 위해 온 것이니 세상을 하직하는 그 시간이 오기까지 그 사랑 삶속에 담고 가겠다.

가장 우리말을 목숨처럼 아끼고 보듬은 문정희 시인, 칠순 이후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걸음걸음이 되시길 빈다.

2019.11.23. 8:00 강길봉 드림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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