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12.14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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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어느 시골마을, 같은 날에 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지방토호 외동아들 마리오와 구두수선공의 아들 안젤모이다. 둘은 친형제처럼 다정하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마리오는 위대한 설교를 하는 교역자(敎役者)가 되는 게 꿈이라고 애기하자 안젤모는 “마리오의 꿈을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할게”라고 약속했다. 얼마 후 교역자 공부를 위해 마리오는 수도원으로 떠났고, 마리오가 없어서 무료하게 지내던 안젤모는 그 수도원의 머슴살이나 다름없는 평수사를 자청해 마리오의 수족역할을 하게 되었다. 몇 년이 흘러 마리오가 사제서품(司祭敍品)을 받고 취임강론을 하게 되었을 때, 안젤모는 격려를 해주면서 하나님께 마리오가 영혼을 감동시키는 설교를 하게 해달라고 평소보다 더 간절히 기도했다. 마리오를 위해 항상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강단 아래 본당 귀퉁이 기둥 사이에서 뚫어지게 강론을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들었다.

“마리오의 설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영혼이 서려있고 벅찬 감동과 환희를 준다”는 얘기가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는 훌륭한 강론으로 주교가 되고 추기경도 그와의 교류를 바랄만큼 유명해졌고 대단한 권세를 지니게 되었다. 세월이 강물처럼 흐르고 마리오가 유명해지고 엄청난 명예와 권세를 얻을수록 그는 옛 친구인 보잘 것 없는 안젤모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빛이 환하고 밝을수록 어둠은 더 짙어진다고 했던가. 안젤모는 불치의 병을 앓고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옛 친구인 주교에게 혹 해(害)를 끼칠까봐 마굿간 뒤 보잘 것 없는 조그만 골방 짚으로 덮인 판자 침대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대 어느 날부터인가 마리오 주교의 강론(講論)에서 환희나 감동이 사라졌고 간혹 무슨 말을 하려다 머뭇거리곤 하는 빈도가 늘어갔다. 사람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강론을 부탁하는 다른 성당은 거의 없게 되었다. 당혹감과 고통스러움으로 영혼이 깃든 설교를 할 수 있게 하느님께 매달려보지만 허사(虛事)였다. 그러다가 오직 자기를 위해 영혼을 지피고 평생 기도하며 살아온 안젤모가 성당 앞 모퉁이 기둥 사이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소식을 물었으나 아무도 몰랐고, 한 늙은 사제가 “15분 전에 하느님께서 안젤모의 숨을 거두어 갔다.”고 전해줬다.

마리오는 안젤모의 죽음과 자기의 무관심에 가슴이 쓰렸지만 며칠 후 일에 몰입해야 했다. 대주교가 되어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강론을 하는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강론은 실망과 경악과 절망에 가까웠다. 강당 밑 어느 곳에서도 열중하며 자기를 바라보는 눈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강론은 생명을 잃은 채 예전처럼 부드럽고 강렬함을 갖지 못했다. 그런 날이 많아지면서 마음의 병이 깊어져 교회의 모든 직을 내려놓았다. 병세가 더 악화되자 최초의 사재서품을 받던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와서 운둔과 요양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일상은 수도원 내 안젤모가 묻혀있는 올리브나무 밑 그늘진 무덤을 찾아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게 전부였다.

마리오는 “나의 모든 절망은 겸허(謙虛)하지 못한 오만함이다. 친구인 안젤모가 나의 본체(本體)요. 나는 단지 그 빈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깊이 깨우쳤다.

‣‣‣ 이 이야기는 오천석 역 <노란 손수건>의 한 작은 소설을 나름대로 축약하고 재구성했다. 적어도 세상의 눈으로 보면 마리오는 안젤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사람이다. 마리오는 세상의 온갖 휘황한 것들을 다 갖춘 사람이고 빛나는 인물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안젤모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어떤 것 하나도 없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혼의 세계나 내면의 정신과 가치 세계는 세상 사람들의 잣대와는 판연(判然)히 다르다. 세상의 눈으로 주인공과 빛인 사람도 영혼과 내면의 정신세계에서는 종(從)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적인 잣대를 가지고 누군가를 빛과 그림자로 주인공과 손님으로 단정할 순 없다는 메시지다.

꽃은 빛깔과 향기를 잃어도 그 그림자는 변하지 않는다. 빛이 어둠을 비추면 빛이 어둠을 둘러싸매 어둠이 없어진 듯 보이지만, 빛이 사라지면 어둠은 원래 그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어찌 보면 그림자가 빛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시간 길(인생)에서 빛은 나그네(a passer-by)요 과객(過客)이지만 어둠과 그림자는 주인이 아닌가 싶다.

우리들은 빛나는 주인공으로서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무능하고 못나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우러르면서 박수를 치는 그림자나 손님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가. 세상의 알갱이와 본체가 되어 휘두르고 지배하고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 나는 살고 있는가 아니면 몸과 마음을 누구인가에게 얹혀 살고 있는 껍데기일까. 세상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2등이 없는 1등이 없고 전교생이 없는 전교 수석이 어디 있겠는가. “일등만 알아주는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어느 점잖은 중년 신사의 농담 같은 얘기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인생에서 나의 등불을 환하게 밝혀준 그림자는 누구인가 생각해보니 나의 어머님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남은 삶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남아있는 시간만큼은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의 삶의 빛남을 더해주는 그림자로 살고 싶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살아서 기다리는 것이다.”는 어느 시인의 싯구(詩句)처럼 이 마음은 내가 죽어서 원래 온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변함없이 갖고 싶다.

이번 주 토요 시는 자작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그냥 글자와 단어 몇 개 즐비하게 나열한 것으로 봐주시길 빈다.


인(人)꽃

꽃이 늦은 봄비로 ‘뚝!‘ 떨어진다.

떨어져 길가에 뒹구는 꽃도 꽃이다.

땅에서 올려다보면 다른 키들이

하늘에서 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

내 눈 속에서

단 한번 만이라도 타서 익고 영근 꽃은

언제나 향기 가득하다.

어제는 내 눈에 피고

오늘은 내 몸에 피고

내일은 내 가슴에서 으깨지리

떨어진 꽃도 꽃이다.

한 번 내게 꽃인 꽃은

내게서 멀어져도

내 눈마저 멀어도

내 가슴 속에서 철도 모르고 피고 또 핀다.

2011.12.8.씀


누구인들 살아가면서 가슴 저미게 좋은 사람,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늙고 병들어 가는 그 사람인데도 이상하게도 세월을 비껴 간 것처럼 동백꽃처럼 싱싱하고 탐스러운 모습으로 내 망막에서만큼은 또렷하게 보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마음속에서 한번 마음 꽃을 피워 내 몸 구석구석에 향기롭게 남은 사람은 계절이 바뀌어도 해가 바뀌어도 피고 또 핀다. 땅에서 핀 꽃은 비바람에 부러지고 꺾이고 떨어지면 없어지지만 마음에서 피고 몸에서 자란 사랑이라는 이름의 꽃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써 본 글이다. 건강한 하루하루가 지속되시길 빈다.

2019.12.14.8:10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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