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20.01.04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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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dream)에 기대어

하늘에 물감을 칠 했던 천재 화가를 본 적이 있는가. 흐르는 강물을 두 동강 내는 검객을 본 적이 있는가. 하늘에 색칠을 하고 강물 같은 세월을 어찌 2019년과 2020년으로 동강 낼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2019년이라는 시간 길을 걸었었고, 지금은 2020년의 시간 길을 몇 걸음 걷고 있다.

누구에게나 ‘세월이라는 이름의 길(’footpath named time and tide)은 ‘끝은 분명하지만 그 끝을 진정 모르는’ 묘(妙)한 길이고, 아득하고 어두운 길이다. 아득하고 어두운 길을 갈 때 옛 선인들은 고개를 들어 별자리를 봤다. 북두칠성->북극성 ->카시오피아 자리의 위치를 통해 동서남북을 알았다고 한다. 닿을 수 없었어도 우리들 위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별은 우리 맘 속 꿈과 다를 바 없다. 어쩌다 별을 쳐다볼 때면 어릴 적 엄니 누나 형과 함께 놀던 때가 그립고, 이제는 세상 사람이 아닌 별이 된 엄니와 형이 몹시 보고 잡다.

새해를 맞이해서 별을 헤이 듯 우리들은 한 해의 꿈 소망 소원 목표를 생각해본다. 우리들은 어떤 소망과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난장이의 곤궁하고(poor and hard) 천대받는 삶을 ‘작지만 맑고 고운 팬지꽃이 폐수로 던져지어 흘러가듯’ 슬프고도 가슴 아프게 전개한 1976년 작 단편소설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중략~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밖에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 영호 영희 그리고 나 우리 다섯 식구는 모든 것(다섯 식구의 목숨)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중략~~ 다섯 식구는 매일매일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중략~~그런대 어느 날 구청에서 재개발사업(아파트 단지조성)을 위해 그들이 살던 하꼬방에 ‘철거 계고장’이 날아왔다. ~~중략~~ 우리 다섯 식구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중략~~거의 모든 집들이 헐리고 철거 막바지 벽돌공장 굴뚝을 허는 날, 아버지는 굴뚝 속으로 떨어져 몸에 피를 뚝뚝 흘리며 죽었다. ~~중략~~ 영희는 그가 좋아하는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버리듯 그의 순결을 아파트 입주권과 바꿨다. ~~이후 생략~

6-70년대 한국사회는 저 높이 치솟은 공장의 굴뚝처럼 경제성장의 깃발을 휘둘렀다. 성장 깃발 아래 소수의 지배계층들은 돈과 권력(지위)의 근친교배로 힘을 무한대로 키워간다. 성장의 그늘속애서 노동에 소외되고 돈에 치이며 지위에 짓밟히며 아무 죄도 없지만 마치 죄인처럼 핍진(乏盡)해가는 사회계층들이 있다. 이 소설은 이들을 난장이, 혹은 ‘난장이와 그 가족’이라 지칭하여 서사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난장이와 그 가족의 소망은 단지 무허가 하꼬방을 철거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식구들이 함께 살고 싶은 것뿐이다

타고르(Tagore, 1861~1941)의 <사랑법>이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엄마, 엄마가 걱정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저 나룻터의 뱃사공이 되고 싶어요 ~중략~

내가 이쪽 강둑에서 저쪽 강뚝으로 / 건너갔다 또 돌아오면

물놀이 하던 마을 아이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모두 쳐다 보겠지요.~ 중략~

그리고 하루가 지나 나무아래 /그늘이 깃들 때 /나는 져녁 어스름 속으로

돌아오지요/ 나는 아빠처럼 엄마를 남겨두고 / 먼 도시로 일하려가지는 않겠어요.

엄마, 엄마가 걱정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저 나룻터의 뱃사공이 되고 싶어요

돈을 벌기 위해 아버지는 먼 도시로 떠난 지 오래되었고, 엄마와 함께 섬마을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아이에겐 마을을 떠나지 않고 뱃사공이 되어 엄마와 함께 사는 게 꿈이란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아가는 게 가족의 유일 최고의 희망인데 그것이 산산조각이 났고 대단한 꿈은 아니라서 한 없이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소박하고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꿈을 갖는 아이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우리들 부모 세대 중 대부분은 가난했다. 오랜 가난을 겪은 사람들의 공통된 꿈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부자가 되고 등 따시게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는 거였다. 고생고생해서 어렵게 마련한 집에 문패를 달고 기뻐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 본 사람들의 공통된 소원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석박사과정 중이거나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의 소원은 교수가 되는 것이다. 꿈은 나이나 성별 현재의 상황에 따라 사람 숫자만큼 꿈도 다양하다.

꿈이라는 무엇인가. 꿈은 일상(日常)이 아니라 이상(理想)이다.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고 과정이 아니라 진정한 과정에 의한 결과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어떤 미래의 이상적인 상태를 꿈이라하며 목표/목적 이념 소원/소망 어떤 바람이다. 흐트러진 일상으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혼란 상태라면 일상으로의 회귀 또한 꿈일 수 있다. 독재 시대나 정치인들의 아귀다툼으로 인해 암울한 시대 상황이라면 정의와 공정 평화와 자유 안정과 질서가 그 사회의 꿈이다. 건강 행복 재미와 웃음 다정다감한 인간관계 여행 우정과 사랑 등도 꿈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고 안타깝다. 추상적이고 모호하더라도 그것은 분명 꿈이다. 별처럼 닿을 수 없을 지라도 꿈은 꿈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하게 사는 것 보다 더 나은 꿈과 목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꿈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삶의 지침이나 방향이 된다. 그 사람이 왜 사는 가의 존재가치이요 존재의 이유다. 잘 살고 있는지의 가늠자이자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삶의 채찍질이다. 어느 공직자가 정년퇴직을 하고 자식도 제 밥벌이를 하고 있어서 별 다른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퇴직 후 삼십 년을 더 살아서 아흔 살(졸수, 卒壽)이 되었을 때 자식과 손자손녀가 모두 모여 축하자리를 마련했다. 큰 아들이 “아버지 저희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될 만한 애기 하나 해주세요.” 라고 했다. 그는 ‘퍽~퍽’ 울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더니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 줄 알았다면, 무엇인가 목표나 꿈을 세워서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같이 삼십 년이란 그 긴 세월을 그냥 보냈구나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씀하셨단다. 꿈은 누구나에게 삶을 의미 있게 살게 하는 활력소이자 살아가는 존재가치요 이유이다.

제3공화국(1961.5.16.~1972.10.17.)과 제4공화국(1972.12.27. 유신헌법~ 79.10.26.)에 이르는 18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 정치사는 박정희 정부의 정치사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빵(bread)’을 위해 노력했고 빵을 키우는 데 장애가 되거나 비협조하는 국민들을 멸시 방치 탄압했던 때이다. 성장과 안보에 관한 권력자의 의지에 거슬리는 말 행동 글의 자유를 그 인격과 더불어 처절하게 억압했던 시기이다. ‘그땐 그랬어’라고 얘기할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은 ‘빵을 위해 자유’를 억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18년 간 박정희 정부의 공(功)은 인정하고 분배의 공정성으로 진일보시켜야 할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또한 그 과(過)나 허물로서 자유에 대한 억압기제는 보리밭을 자유롭게 나는 종달새처럼 풀어주되 방종(放縱)하지 아니하도록 교육과 제도 개량을 해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 공을 무시하고 과(過)만 부각시키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반면에 공을 내세워 그 허물을 흐지부지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3공화국, 특히 제4공화국 때 꿈을 꾸지도 못하고 꿈이 사라진 민중들 속에서 문학청년시절을 보낸 시인이 있다. 시인 곽재구(1954~현재)다.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났고, 1972.10. 이후 유신체제를 겪었고, 1979.10.26. 사건과 1979.12.12. 사태, 1980.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1.3. 신군부의 제 5공화국 출범 등 굵직굵직한 한국정치사를 광주(光州)라는 현장에서 몸소 겪었다. 1976년 전남대 국문과 학생인 곽 시인은 군 입대 전날 밤 송별식에서 <사평역에서>라는 자작시를 낭송하게 되었다. 군 제대를 하고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는 지인의 권유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응모를 하게 되었단다. 그 신춘문예에서 시부문 당선작을 이번 주 토요 시로 소개하고자 한다. 곽재구의 <사평역(沙平驛)에서>의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 청색의 손 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첫째,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의 첫 문장은 시인의 문학청년시절에 자유 민주 인권 등의 희망, 당시 국민들의 열망이 쉬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둘째,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등이다. 당시의 암울 했던 시대 상황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자연은 그대로의 휘황함으로 그 향기와 빛깔을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연과 대조되는 민중들의 어둡고 비참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표현들이다.

셋째,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청색의 손 바닥/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 오래 앓은 기침소리/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 낯설음도 뼈아픔/ 등등이다. 희망과 자유를 강탈 당하고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삶의 행렬들을 서사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희망이 없이 세월이 무상하게 지나가고 있다는 한탄(恨歎)조의 문장 같다.

넷째,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모두들 알고 있었다./ 등이다. 희망이 없는 암울한 시대에서는 한탄조 노래라도 뽑으면서 고함치고 울고 했으면 가슴에 멍~한 아픔은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마저 억압당해 피눈물을 삼키며 그것을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정을 가슴 아파하며 얘기하고 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hotorama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hotorama님의 이미지 입니다

끝으로 자연의 휘황함과 대조적으로 막차마저 오지 않는 절망의 시대, 정기(精氣)마저 잃어버린 핍진한 사람들,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고 울부짖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시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따뜻한 위로의 말로 그들의 어깨를 다독거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다. 톱밥난로에 한줌의 톱밥으로라도 녹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불빛에 반짝이는 밤열차)/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등이다. 톱밥난로에 한줌의 톱밥을 던지면 환-하게 탄다. 눈꽃 호명(이름 부르기로 존재를 확인시키고 삶의 의욕을 갖게 함), 불꽃 (따스한 온기와 밝음), 한 줌의 눈물(슬픔의 공유 공감) 등이 시인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라는 대목이다. 시간이 흐르면(죽음에 일거나 철이 들면) 갈등과 반목이라는 인간관계(낯설음과 뼈아픔)라는 것도 별거 아니라는 거다. 서로 미워하고 칼을 쥐고펴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상처를 위무하기도 한다.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자연스럽게 이 대목을 속으로 읊는다.

결국 시란 무엇이고 시인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더 나아가서 교수나 정치인 지식인 한국의 부자 또는 언론인들은 무엇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등 다양한 메시지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새해를 맞이해서 크든 작든 개인적이든 아니면 사회전체의 소망과 같은 것이든 나를 위해서 또 나와 함께 동 시대를 걸어가는 우리들을 위해서 나는 무엇이고 무엇으로 살아야할 것인가 등 이런저런 꿈을 꾸시길 빈다. 몇 개월 아니 몇 년이 요구되는 것이든 꿈을 꾸며 꿈으로 다가가는 길, ‘아름다운 꿈길(footpath of beautiful dream)’을 걸으시기를 바란다. 그 냥 익숙한 일상의 길도 잘 다듬으면서 아름다운 꿈길을 걷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새해 첫 주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본다. 건강한 시간길 되시 길 빈다.

2020.1.4.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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