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20.01.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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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추억에 기대어 영그는가 (#3) 순천 물길

육십 고개를 몇 발자국을 뛴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1966-1967년 두 해 같은 낭만의 시간은 그 후엔 없었다. 신(神)도 그런 낭만을 허락(許諾)할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생생한 것을 보면 가장 많은 추억을 내 가슴에 아로새긴(engrave elaborately) 시간이었다. 이 두 해는 초등학교 상급반 3년과 중고등학교 6년 동안보다 더 선명한(鮮明,vivid) 시간 길이다.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저런 일에 쫓기에 보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은 단지 ‘1989에서 1999년’이라는 숫자판에 불과하다. 마치 밤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때, 차창가를 스치고 지나간 주마등(ever-shifting) 같다.

사는 게 재미에 빠져 세상의 눈과는 전혀 다르게 지냈던 시간들은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눈을 감고 있으면 영상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11살까지 특히 초등학교 상급반이 되기 이전까지 시간길이 내게 주는 메시지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사인 <두저讀者>에 나온 얘기와 거의 동일한 의미이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망설임 없이 잡고, 지금보다 더 바보처럼 살겠습니다. 깨끗하게 살려고 지금처럼 애쓰기보다 ~중략~이른 봄날 아침이나 깊은 가을에 거리를 걸어보고~~늦잠을 자고 좋은 공연도 보고~'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고~~나는 정말로 꺽을 수 있을 때, 더 많은 꽃을 꺽겠습니다.” 더공감(2011), <감동의 순간, 90초>‘내게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요약.

나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이라는 거울’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시간들은 3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1968년 설이 다가오면서 아스라이 떠나갔다. 그때 순천역 대합실 출입구 바로 안쪽에 구두를 닦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 뒤쪽엔 음료 껌 사이다 등을 파는 가게, 가게 바로 앞 8미터엔 톹밥난로가 있고 난로 주변에 긴 의자가 있었다. 가게 왼편에 짙은 황칠 색을 입힌 3-4인용 의자들이 좌우 세 줄씩 있다. 출입문에서 15여 미터 쯤 승객들이 나가는 개찰구가 맞보고 있었다.

1966년 순천역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
1966년 순천역 (출처:국사편찬위원회 웹사이트)

저녁 열 시 이후엔 역 대합실이 한산하다. 이리역 송정리역 혹은 여수역 막차를 타거나 승객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다음 날 값싼 새벽열차를 타야할 사람, 오갈데 없거나 가난하고 한가한 사람들이 여름 밤 수은등에 모여든 부나방처럼 난로에 모여든다. 기약이 없는 기다림과 막연함속에서 건달이면서 소문난 키타쟁이인 육섭이 형님이 키타를 들고 가게 앞에 앉으면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왼손 엄지로 5-6번 코드를 살짝 누르고 새끼손가락을 빼고 나머지 세 손가락으로 1번 3번 2번 줄을 누른 뒤, 서너 번 줄을 튕긴다. ♬♫ 딩동댕동♬♫~~ 디마이너(Dm)의 낮고 슬프면서도 맑은 소리가 대합실에 물결처럼 퍼진다. 가끔씩 ‘틱`틱` 거리는 톱밥 타는 소리가 난다. 기타를 치면서 그 형님이 부르는 노래는 배호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이다. 남 저음의 슬프고 아름다운 목소리......

사~랑~~이라면 가-지~말 것을 처-음- 그 순간~ 만~~났던 날부터 괴로운 시이이절 거치~일~~ 주울~몰~라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무우울을 야~~~윈~튜뺨에 흘러 내릴 때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 ♫♪♩~생략~`이다.

그 당시 배호의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랑’을 부르다 보면 '찬바람이~♫♪ `등 가사가 나오는 때가 있다. 배호 노래와 자꾸 혼동되는 노래이다. ‘사랑’ ‘가버린’이나 ‘속으로’ ‘두뺨‘ 등에서 언어가 겹친다. 노래가 히트되고 대중의 가슴속에 애절하게 다가온 시간도 유사하고 매력적인 저음(低音)이란 점에서도 일치한다. 한 사람은 1968년, 또 한사람은 1971년에 서른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11월, 가을에 세상을 떠났다. 역전에서 장대다리 건너기 전 오십 미터 거리 커브 길에 레코드점이 있었다. 거기에 걸려있는 레코드판에 나온 얼굴을 보면, 정말 잘생기고 건장해서 누나들이 ‘줄줄이’~~따를 것 같은 가수다. 가수 배호가 저음과 고음처리에 탁월했다면, 그는 중저음과 미성(美聲)의 테너에 가깝다.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내 고등학교 친구인 평수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노래를 불렀다.

찬↘바람이↗ –싸늘하게~뚜루루루 뚜루루↗루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잎새의 사랑의 꿈고이 간직하렸더니 아아아아↗ 그 옛날이 너무도 ↺ 그~립↗구나 ♫♪♩~생략~`이다..

관념론자들은 시간(時間)이 무엇인가를 바다 강 냇가의 물길로 가늠했다. 순천의 대표적인 물길은 동천 옥천 두 물, 즉 이수(二水)다. 그외에도 서천 평곡천 석현천 상사천 이사천 해룡천이 있다. 학구 상류 400미터 농암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서천(西川)과 압록에서 흘러내려온 평곡천(平谷川)이 삼산(三山) 아래에 이르는 지점에서 동천과 만난다.

실제 삼천(三川)이 삼산(三山) 밑에서 합류한다. 이중 동천은 서면 청소골 수원지(水源池)에서 시작되어 봉화산과 남산 양쪽 아래 평야지대에 젓줄 역할을 하며 흐른다. 석현천은 400미터 갓대봉 골짜기에서 석현동 삼산동을 지나고 향림사 3층석탑를 거치고 오리정 밑 하천으로 흘러 동천에 합류된다.

옥천(玉川)은 용수동 상류에서 시작되어 난봉산 아래 골짜기 와룡저수지 도치소 가치소 향동을 지나 남문다리 성동교를 지나서 죽도봉 아래 동천과 합류한다. 다섯 물길이 ‘동천(東川)’에 와 닿아 흡수통합된 셈이다. 그렇게 몸집을 키운 순천동천은 장대다리 철교 풍덕다리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호수정원 사이를 흘러 해룡산을 끼고 흐르다 도사초등학교 조금 지나 상사천과 이사천까지 끌어 안게 된다. 상사천은 낙안면 금전산(668미터)과 우산(550미터) 사이 골짜기에서 발원(發源)하여 상사면과 마륜리를 지나 상사 초입(初入), 지금 엠버서너 호텔 앞에서 이사천과 만난다.

이사천은 상사호 물길을 가두고 있는 주암댐에서 시작되어 상사면사무소를 지나 상사 초입에서 상사천을 흡수하고 야흥(野興)과 연동 마을 사이를 거친다. 다시 도사초등학교를 지나서 형성된 삼각주(三角洲)에서 동천에 합류된다. 일곱 개 물길을 품은 동천은 순천만습지와 순천문학관을 지나 순천만 갈대군락지에 이르러 해룡천과 합류된다. 4-50년 전 보해(寶海)소주공장에서 150미터 지나면 다리 아래 제법 큰 천(川)이 있었다.

지금 구암사거리(순천역전 여수쪽 500미터) 밑 냇가는 참붕어가 드글드글 했다. 바로 옆 독산(돌산, 채석장)과 주변 높은 지대에서 모아진 물로 제법 큰 개울이 있었다. 그것을 발원지로 해서 풍덕초등학교를 지나고 남승룡로를 가로질러 흐르다 홍내교 해룡교 밑을 흘러 순천만갈대군락지로 유입되면서 동천과 만난다. 그것이 해룡천이다. 결국 여덟게 물길(川)이 람사르공원 생태체험장을 굽이돌아서 대대포구와 용산 사이 갯벌로 흘러들어간다. 순천만(順天灣)으로 흘러들어간 여덟 물길은 와온해변과 화포해변 사이에 머물다 그 몸을 다도해에 맡긴다. 순천을 스무 해 동안 살았고 육십이 넘어서도 내 마음에 아롱진 풍경이다.

청소골에서 시작된 동천 물결이 서천 평곡천 석현천이 합류해도 끄떡없더니(no nodding) 죽도봉 아래 옥천이 합류하면서 물색이 달라진다. 갑자기 동천 물결 위 나뭇잎배가 심하게 충렁거렸다. 재미로 정신이 나간 나처럼 출렁거린 나뭇잎배가 순천 대목 장날 장대다리를 지나가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를 가만가만 듣고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뙤~액~‘하는 석탄기차(石炭汽車) 소리에 놀란다. 나의 초등학교 상급반이 되는 1968년은 기차소리에 나뭇잎배처럼 놀라 출렁거리는 시간 길이었다.

검거 직후의 김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검거 직후의 김신조(왼쪽에서 두 번째)

1968년 설을 얼마 앞두고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흥분되는 목소리 “북한 정찰국 소속 특공대 김신조와 31명 일당은 청와대를 습격~~~” 이 라디오에서 연일 긴급뉴스로 나왔다. 역전대합실 신문도 금세 동이 났다. 어수선한 가운데 1월 말일 설날이 되었다. 엄니가 준 돈으로 점방에서 소주 두 병과 과자를 사서 남산 중턱 아버지 묘소와 뒷산 몬당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 가서 새해 인사를 드렸다. 다시 상인제동 문중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어른들은 “어찌됐거나 일은 그렇게 되았으니, 니가 니 엄니 속을 잘 알고 공부도 열성으로 하고 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말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른들이 하는 말이니 ‘예’하고 대답하고 나왔다. 구리 동전 서너 개를 새뱃돈으로 받았기에 개비가 든든해서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동네 앞 점방에 들러서 당숙모께 인사하고 삼 년 전 그날 그 때쯤의 생각을 하며 걸어내려왔다. 철조망이 엉기성기 처진 순고 뒷쪽엔 아주 작은 도랑에 얼음이 하얗게 얼어 있었다.

어른 키 높이의 서너 줄로 된 철조망을 넘고 야트막한 소나무와 잎이 말라 바삭거리는 상수리 나무를 밀치고 들어가서 순고 순중 운동장을 지나 정문으로 나왔다. 남파 쪽 주유소 앞 건널목을 건너 사진관을 끼고 돌아 역전으로 가는 신작로에 들어섰다. 철길교차로에서 흘끗 보니, 나이롱극장은 열리지 않았다. 곧장 철길을 건너 내리막길을 한참 가니 아랫장과 기재논을 가로지르는 작은 또랑이 나왔다. 또랑 넘어 대나무숲 건넌 편 배밭 탱자나무 울타리에 따신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신작로를 건너 울타리에 서서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디에 돈을 숨겨야 할까. 분명히 엄니가 “인제동 새배갔는데 ‘짜안~’하다고 새뱃돈 줬을 건디, ‘한나도’ 안 주대.”라고 물을 텐데. 그런 날 호주머니에 돈이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 또 걱정도 된다. 나도 모르게 언제 배웠는지 모르지만 흥얼거리는 초등학교 노래다. 그 노래는 ‘나뭇잎배‘다. 풍덕다리를 지나는데 내가 둥둥 떠가는 나뭇잎 같았다.

낮에~ 놀~다 두~우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 요 푸른 달과 희~인~구름 두↷웅실 거리는 연~못↗에서 살↷아알↺살 떠 다~아니 게~엤지. 연못에다 띄워 논(left by the pond) 나뭇잎배는~~중략~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 새를(among the rustling rushes) 혼자서 떠다니겠지 

1968년 삼월 개학날이다. 4학년 2반으로 반배정이 되었고 교실은 남교오거리에 근접한 흰색 5층짜리 신축건물 1층이다. 교실에서 창가쪽을 바라보면 1층 도서관 그 앞에 큰 강당이 멋들어지게 버티고 있고 강당 앞에는 널따란 운동장이 보였다. 1학년 때 공부하던 1층 나무건물은 이미 없어져서 운동장은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였다.

4학년 2반 담임은 (고)김봉련 선생님이셨다. 약간 마르셨고 중키에 살짝 대머리가 될라말라 했다. 바이올린을 잘 켜신 눈이 선하고 마음이 착하며 예술가처럼 생긴 분이셨다. 내가 생전 처음으로 만난 남자 선생님이다. 반장은 얼마 후 서울로 전학 간 공부 잘하는 염동관이고 좌석은 창쪽에서 복도 방향 순으로 앉았다. 나는 34번이라 한 가운데 자리다.

선생님 말씀이 한 달 후 월말고사 시험결과에 따라 성적순서로 맨 앞줄이 창가서복도방향으로 분단장(1등~6등), 그 뒷줄은 부분단장(7등~12등), 그리고 셋째 줄부터는 분단원으로 구성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공부는 안했지만 부분단장은 해야 한다고 이를 깨물었다.

한 달 후 시험에서 부분단장이 되지 못했다. 구구단을 외우는 산수 과목은 틀린 숫자만큼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역전에서 이사람저사람에게 얻어터진 적은 많아도 ‘깡다구’로 버텨 울지 않았다. 엄니는 어디서 맞고 오면 어려서부터 “병신 같이 비싼 밥 처먹고 맞고 왔냐. 이런 새끼는 밥알도 아깝다.”고 더 때렸고 밥도 주지 않는 적도 있다. 그래서 남이 때리면 죽기 살기로 이 악물고 싸웠고 여간해서 울지 않았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회초리로 손바닥을 서너 대 맞았는데 눈물이 펑!펑! 나왔고 ‘엉엉’ 울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서러웠다. 그때까지 한 번도 공부란 것을 집에서 해 본적이 없고, 처음으로 학교를 오가면서 구구단을 외우고, 역전 대합실 형광등 아래에서 시험공부를 했는데...... 매를 맞다니! 그게 서러웠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몇 대 맞고 씩~하고 지나치는데 너무 우니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남으라고 했다. 학생들이 다 집에 가고 없는 교실, 선생님은 이리저리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기봉아, 너 수업료와 육성회비 면제받고 무상교재 무상급식을 받지.”라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예~~ 선생님.‘이라 대답했다. “엄니는 뭐하시냐“ ”예, 역전 저잣거리서 시래기 국에 찬밥 한 덩어리 넣어서 저잣거리 손님들에게 밥도 팔고 막걸리를 팔고 있어요.“ 라 말씀 드렸다. ”형이나 누나는 뭐 하냐.“ ”예~ 먹고 살기 어렵다고 누나는 이모집, 형은 고모집서 얼마동안 살아라고 해서 거기서 살고 있습니다.“ 얘기를 듣고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며 가만히 계시던 선생님은 말씀을 이으셨다.

”길봉아, 아버지도 안 계시고 어머니 혼자 자식들 먹여살리겠다고 그렇게 애를 쓰시는 것은 참 훌륭하시다. 어머니가 고생하는 것은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것인데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다. 알 것냐 이-.“ ”예~~~알겠습니다. 선생님.“ 구십 도로 머리를 수그려 인사를 하고 호랑이 상이 있는 정문을 지나 오거리 사진관 건너 찬일이네 벽돌공장 목공소 신식 건물인 시민화괸 그리고 남파까지 누가 나를 업고 온 듯 훈훈하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대단하신 선생님이 눈에 눈물이 고인 듯한 모습으로 따신 마음을 나에게 주셨다는 게 너무 고마웠고 한 없이 감사했다.

배밭을 지나 풍덕다리를 건너고 역전으로 오는 내내 ”학교 잘 가고 가능한 결석하지 말아야 겠다. 시험공부도 해서 부분단장 꼭 되자. 엄니에게 한 푼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다짐했고 그동안의 철없는 생활을 반성했다. 철길교차로를 넘어서 풍덕다리를 오르면서 내내 입에서 떠나지 않는 노래가 있다.

개굴 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이 없네 듣는 사람 없어도 날이 밝도록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굴개굴 개↺구리 목청도 좋다↗ ♬♫ ♬♫

4학년이 되면서 학교를 결석하지 않고 꾸준하게 가고 역전 형님들에게 들은 웃기는 얘기로 친구들을 웃게 하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차츰 학교 주변이나 옥천 냇가 판자촌 등 가난한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시민극장 아들인가 하는 준수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는데, 당시 성동교 옆 중앙고물상 뒤 그 친구 집이었다.

대문도 높았고 들어가자마자 분수대가 있고 집도 커서 마룻바닥 밑으로 숨바꼭질을 할 정도로 엄청났다. 인제동 강부잣집만큼 대단했다. 그렇게 부자인데도 그 친구는 항상 외로워보였는데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수업을 착실하게 들으니 가끔은 6분단장이나 7-8 부분단장도 했다. 만들기 부를 만들어서 자진해서 부장을 했다. 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만들기 대회에서 나갔다. 철도운동장 시멘트 계단 아래 진흙땅이 있었다. 거기서 심심할 때 혼자 수 없이 만들었던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그 경험으로 거북선을 만들어 제출했다.

가작(佳作)을 받아 상을 탔다. 최종심사에서 5명 선생님 중 두 분이 내 것을 추천해주셔서 전교에서 우수상 바로 다음인 2등인 상(償)을 받게 됐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또 한 번은 정문까지 친구들을 인솔해서 청소를 하고 역전에서 하는 대로 학교정문 들어가기 전, 작은 도랑을 깨끗하게 치우는 일을 한 달 동안 손수 했더니 ‘착한어린이상’인가 혹 빼지를 탄 적도 있다. 입고 다니던 옷이나 책보 고무신은 지저분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내치지 않아서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또 역전에 사는 같은 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 아들인 착하고 얌전한 규는 다른 곳에서 이사를 왔고 안경잡이 병량이는 착하지만 약간 얼뻥한 친구라서 내 꼬봉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 두 친구와 2년 동안 학교를 오가며 친해졌고 역전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철모르고 따라 부른 말랑말랑한 노래는 ‘소양강처녀’다.

해저~문~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새야 새야 새야새야새야♫ 열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처↺녀↷ 동백~ 꽃 피↺고↷지는♬♫

2020.1.25.0:35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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