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20.02.29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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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가.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소망은 해방과 독립이다. 해방과 독립의 피와 살은 자유다. 해방 이후 정부는 자유라는 꽃을 꽃병에 꽂아둔 채 저만치 치워두며 애써 외면했다. 사반세기 넘게 혼돈(chaos)과 암울(melancholy)을 겪은 국민에게 안정 질서 통일 경제성장이라는 풍선을 띄웠다. 풍선을 따라 간 몇몇은 웃었지만 대다수는 울었다. 자유도 강제로 반납했지만 빵을 준다고 한 약속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몸과 맘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했고 통일은 상처만 남기고 바람 빠진 풍선으로 임진강가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21세기 초입에 있는 우리 사회는 ‘비버리지 보고서의 5대 사회악’ 중 ① 무지와 ② 빈곤(가난)은 자녀 교육에 대한 거의 헌신적 노력으로 이만큼 저만큼 해결되어가는 듯하다. ③ 나태(게으름)은 부지런한 민족성 때문에 극히 일부에 불과한 사회악인 듯하다. 문제는 불결(不潔, dirtiness)과 질병(disease)이다. 불결이란 물건이나 상황은 물론 몸과 옷매무새가 깨끗하지 못한 상태, 또는 마음과 행동이 도덕적이지 못하고 나쁜 상태이다. 질병은 심(心)과 신(身)이 일시적 혹은 지속적으로 비정상적 상태, 즉 용이하거나 편안하지(ease) 아니한(dis, no)상태이다. 5대 사회악 중 특히 불결과 질병은 긴밀하게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2002년과 2003년 사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비슷한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했다. 가장 최근엔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로 우리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2020년 2월 현재는 중국우한에서 발생해서 전염전파 중인 ‘신종 콜로나19’라는 어둡고 답답한 질병 장막에 에워싸여 있다.

매일 큰 딸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체크를 하고 있다. “코 세척기 했어!, 손 세정제 때때로 바르고 있냐!, 눈이 조금이라도 가려우면 인공 눈물 약을 했냐, 시시때때로 따뜻한 물을 마시고 있냐.” 마치 부모가 아이 걱정하듯 야단법석이다. 또 신종코로나 환자의 動線이 겹치는 어느 스크린골프장에 간다고 하니 친구 마누라는 아예 밖에도 못나가게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성가시게 느낄 때가 많고 애비를 늙은 노인네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을 때도 있다. 하지만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누군가 그대를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그것은 분명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랑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우환 중에 사랑 꽃을 확인하는 순간을 맞본다. 분명 평상시에 피어나지 않는 행복꽃을 맞보는 즐거움도 있다.

젊은 날 병상에 두 달간 누워있을 때가 있었다. 나이 들어서 사나흘 아니면 일주일 정도 병실에서 지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환자를 문병하러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시간을 견디면서 책에 몰입한다. 아니면 하루 종일 암송한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고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의 말을 되새김질한다. 시편 23장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이다. 그리고 가난과 병마 속에서도 신이 목숨을 거두어갈 때까지 그 기개(氣槪)와 사랑을 움켜쥐고 살았던 시인이 생각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아랫동서였던 김관식 시인(1934~1970)이다. 그는 ‘병상록(病床錄)’에서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다.”고 했다. 가난 또는 병마에 시달릴 때, 모두가 나에 대한 어떤 희망을 포기했을 때, 나를 붙잡게 한 시다.그의 시 <병상록>이다.

병명(病名)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年.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중략~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熱)이 오른다 /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燈盞)에 불을 붙인다.

방(房)안 하나 가득 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

백금(白金) 도가니에 넣어 단련(鍛鍊)할수록 훌륭한 보검(寶劍)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가난이라는 상황 속에서 진한 가족애와 사랑을 다룬 시로 박목월(1916~1978) 선생의 <모일(某日)>를 빼놓을 수가 없다.

시인이라는 말은 내 생명 위에 늘 붙는 관사(冠詞)

이 낡은 모자를 쓰고 / 나는 비오는 거리로 헤매었다.

이것은 진실을 가리기에는 너무도 어줍잖은 것

또한 나만 쳐다보는 어린 것들을 덮기에도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

허나 인간이 평생 마른 옷만 입을 까보냐

다만 두발이 젖지 않는 그것만으로

나는 고맙고 눈물겹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 그것도 오랜 시간동안(낡은 모자) 비도 못 가리지만, 생떼 같은 자식을 먹여살리기엔 어처구니 없는 직업이다. 그레도 만족하고 감사해야 할 것들도 많다고 긍정했다. 박목월 선생의 또 다른 시 <가정(家庭)>이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 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육문삼의 코가 납작한 /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 내 얼굴을 보아라 /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

아홉 컬레 신발 중 십구문 반 신발은 아버지 신발이다. 너머지 신발 특히 육문 삼 크기의 신발은 막내신발(아마도 서울대 국문학과 박동규 시인으로 추정)이다. ① 가난하고 힘겨운 삶의 여정<눈과 얼음의 길, 연민한 삶의 길, 얼음과 눈으로 벽(壁)>이지만 ② 자식에 대한 뜨거운 사랑(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아랫목)을 ③ 기쁜 마음으로(미소하는 내 얼굴, 아버지가 왔다, 그들 옆에 벗으면) 실천하겠다 다짐한다. 참 따시고 좋은 아버지이시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가슴 따신 시로 고대 교수이자 시인이셨던 김종길(1926~2017)의 <성탄제>도 손꼽힌다. 모두가 가슴 설레는 성탄절 밤, 열이 나서 몸이 불덩이 같은 손자(나)가 숨을 할딱거리고 있다. 딱히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방도 가 없는 할머니는 춥지 않게 가슴조리며 화롯불을 피워 앓고 있는 손자를 지켜본다. 돈이 없어 마땅히 제대로 된 약을 살 수 없는 아버지는 눈 쌓인 추운 겨울 산골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저곳을 헤매며 병에 효용이 있다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가져오신다. 자식을 위한 눈물겨운 아버지의 따신 마음에 아들(김 시인)이 어린 짐승처럼 절대적으로 기댄 모습이다. 할머니 아버지 나로 이어지는 삼대의 ‘가난과 질병 속에서의 애틋하고 진한 사랑노래’가 눈에 아른거린다. 고대 교수이자 시인이셨던 김종길(1926~2017)의 <성탄제>의 전문(全文)이다.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나를 지켜본 사랑꽃이 피어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우선 시시때때로 따신 물을 마시자. 손과 눈과 코를 청결하게 하는 것을 습관화하자. 나를 위해서 그리고 너를 위해서 나를 청결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힘쓰자. 많은 병마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의료진과 봉사자들에게 감사하자.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속에서 진한 동료애를 느끼며 누군가의 아픔을 안타까워하자. 좋을 때도 나쁠 때도 가뭄에 논 물 줄 듯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있으니 조심하는 중에도 재미있게 살자. 이 또한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여유를 조금씩 조금씩 찾자.

2020.2.29. 13:55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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