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20.03.14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살다보면 참으로 이상한 인연에 머리를 갸우뚱거릴 때가 있다. 분명히 처음 간 곳인데 언젠가 한두 번은 꼭 왔었던 곳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는 경우이다.

더욱이 처음 본 사람인데도 언제인가 많이 만난 사람처럼 이무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입속에 혀처럼 내 마음과 같은 감정과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할 때면 더욱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그곳에 간 적도 없고 그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럴 때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전생(前生)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신종 코로나19로 최근에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상태도 언제인가 맞이했던 상황과 별다르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더 된 1978년은 내가 대학교 신입생 시절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2월 말경 이후 어떤 사연이다.

“엄니 오늘 저녁 아홉 시 십오 분 기차로 서울 올라갈라요. 친구들하고 놀다 여섯 시쯤 들어 오께.” 집을 나간 후 일곱 시쯤 들어와서 가방과 옷을 챙기고 저녁 먹고 TV를 보다 기차시간 삼십 분 전에 집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엄니는 속옷 갈아입으라고 새 빤스를 하나 줬다. 엄니가 준 빤스 안쪽은 앞 쪽이 볼록 나올 만큼 두터웠다. 언뜻 보니 빤스 앞부분 속에 바늘로 꿰맨 네모난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아니, 뭔 이런 것을 달아서 줘. 남사스럽게.” “에미가 뼈 빠지게 번 돈을 쓰리(도둑) 당해 뿔면 어쩔 거냐. 아무소리 말고 애미 시킨 대로 해라이~.” “예~ 그런디 하필이면 빨간 주머니가 뭐여~” ”뭐 어째서, 빨간 내복 헐은 것이 있어서 가위로 짤라 애쓰고 꿔맸당께.“

완행열차 흥겨운 행락객들1975. 06. 01
완행열차 흥겨운 행락객들(1975. 06. 01)

순천에서 밤 아홉 시 서울행 열차는 새벽 다섯 시 쯤 서울역에 도착한다. 그때쯤 서울역->남대문->한남동->말죽거리로 가는 78번 버스를 탈 수 있다. 그래서 상경할 때면 그 시간 기차를 탔다. 그 당시만 해도 좌석을 미리 끊었다 해도 좌석만큼 입석 손님들도 많았다. 석탄 고열로 증기를 품어대며 ‘치~익 칙칙 폭폭,~~칙칙폭폭~거리며 달리는 기차소리가 요란했지만 2월 말 밤 열차 안의 풍광도 기찻소리만큼 시끄럽고 후끈 했다.

“오징어 땅콩 카라멜 있어요.” “삶은 계란이나 껌 있어요.” 사이다 콜라 음료수 있어요.” 제복을 입은 홍익회 남자 직원이 목소리를 깔고 시시때때로 외친다. 홍익회 아저씨가 좀 뜸 할 때면 홍익회 아기씨 두 명이 미소를 띠고 히프를 살짝 도시면서 “커피 있습니다. 커피요.”하고 부드럽게 외친다. 기분이 들떠있는 아저씨에게 다가와 “한 잔하시죠.” 하면 “여그 넉 잔 주시오.”하고 호기있게 대답을 한다.

여기저기서 스루미(오징어) 다리 좌악~쫘악 뜯어서 어금니에 넣고 잘근잘근 씹는 소리, 종이컵에 병맥주를 따라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왁자지껄하며 떠드는 소리, 분명히 처음 본 사이인데도 한 몇 년을 만난 것처럼 금새 친해져서 행님 동상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입석표를 가진 사람이 좌석에 궁둥이를 약간 들이밀었다고 실랑이 하는 소리, 앞좌석에 앉은 이쁜 아가씨에게 어찌 전화번호라도 따려고 애쓰는 어떤 남자의 감언이설, 빨간 솔이 맛있니 아니면 청솔이 그래도 낫다느니 하면서 함께 피우는 뽀오얀 담배연기...... 열차 안은 적어도 저녁 한 시까지는 시장바닥보다 더 시끄럽고 후끈했다.

앞좌석 아저씨가 한잔 하라고 준 맥주를 서너 잔 받아 마셨다. 내복에 옷을 서너 겹 입었더니 땀도 나고 갑갑했다. 바람도 쐬고 소피도 볼겸 일어나서 출입문을 열었다. 두어 명이 화장실 문앞에 일을 보려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과 차량 사이 이음새 부분에서 철커덕철커덕 하는 소리를 들으며 열차를 타고내리는 출입구 근처로 가서 창가에 머리를 대고 차창 밖을 내다봤다. 찬 기운이 이마에 퍼져 얼얼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찬 공기를 가르며 밤열차는 꽤엑~~거리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어서 소변보려고 지퍼를 내렸다. 아니 이거 웬일이야.“ 하얀 빤스가 온통 빨갛게 젖어 있었다. 어두운 백열전등 속에서 언뜻 보니 마치 핏물 같았다. 순간 몸 어딘가에 상처가 난거 아닌가 하고 무서웠다. 소피를 보고 수도꼭지서 손을 씻는데 빨간 피 같은 물기가 묻어있었다.

뭔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석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본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이월 말 겨울이라서 내복(內服)도 입었다. 열차 안은 후덥지근하고 자리는 비좁고 사람들은 많다. 얼굴이며 겨드랑이 배 등 온몸에 땀이 범벅이다. “아하~~얼굴 겨드랑이나 몸 이곳저곳에서 난 땀이 배꼽 아래로 흘렀구나. 빤스가 젖었고, 빤스 안 네모난 빨간 주머니도 젖고, 빨간 빤스를 적신 땀이 다시 흘러서 사타구니와 무릎 안쪽까지 벌겋게 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또 다시 걱정이 생겼다. “빤스가 빨갛게 젖었으면 육성회비와 두어 달 생활비로 지폐 열 장이 빨갛게 젖으면 돈으로 써(인정해)줄까.” 하는 것이다. “아이고 그걸 어쩨야 쓰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재빨리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빨갛게 젖은 돈을 손수건으로 살살 찢어지지 않게 닦았다. 출입문 쪽 군발이 서넛이 무서운 거 없는 듯 술 취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가수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이다.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당신만을 만나지나 말~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 그 추억이 또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 ♬♫

엄니가 빤스에 주머니를 달아서 그 안에 돈을 넣고 서울로 올라가는 일은 그해 가을학기에는 조금 변했다. 빨간 천이 흰 천으로 바뀌었고 2학년이 되면서 없어졌다. 가끔 속옷을 입을 때면 잃어버리면 정말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얀 빤스에 빨간 주머니를 달아주던 화롯불 같이 은은한 모정(母情)이 생각난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다 되가는데 엄니가 애잔하게 그립다.

1978년 2월 말엽 새벽 기차에 내려서 78번 버스를 타고 한남동 육고 아래 버스정류장서 내렸다. 한남동 시장입구 이층 청산독서실에 짐을 풀고 본격적인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며칠 후 신입생 환영회가 있었다. 기타를 치며 절규하듯 부르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 ‘이름 모를 소녀’가 서막을 장식했다. 이어서 D 마이너의 나직하고도 묵직한 기타 줄이 튕기면서 당시 재학생이었던 가수 이정선의 ‘섬소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신입생 노래자랑이다. 일 이 삼 등 안에 들면 무슨 상금을 준다고 했다. 모든 것 다 떠나 상금에 눈이 멀어서 신청을 할까 망설였다. 단과대학별로 신청자를 받는데 법과대학은 아무도 신청을 하지 않기에 내가 나섰다. 장 일남 작곡의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2절까지 불러야 하는데 2절가사를 까먹고 1절만 두 번을 불렀더니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그 작은 사건을 계기로 입학식부터 일 학기 내내 마치 가수가 된 기분으로 살았다. 여기저기 과모임이 있을 때 항상 첫 번째나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렀다. 주로 ‘비목’ ‘기다리는 마음’ ‘동심초’ ‘얼굴’ ‘그네’ ‘제비’ ‘눈물속에 피는 꽃’ ‘가고파‘등 주로 가곡류의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 때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간직하고 있어서 가능했던 노래들이다. 지금은 목소리가 맛이 가서 대부분 부르고 싶을 뿐 제대로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를 마치고 강당에서 나와 학교정문을 향해 걷고 있는데 언덕길에서 한 친구가 나에게 청솔 담배 ‘한 까치’(한 개)를 줬다. “노래 잘 들었다며, 왜 성악과에 안 가고 행정학과를 들어왔냐고 웃으면서.” 선한 눈빛에 웃음기와 장난기를 함께 지닌 녀석이었다. 서울 놈이 주는 담배인데 못 피운다고 말하기 싫어서 받아서 피웠다. 세상에 이런 것을 왜 피우는 지 기침에 눈물까지 나왔다.

당시 한남동에는 두 개의 유명한 다방이 있었다. ‘민들레 다방’과 ‘푸른잔디’였다. 민들레 다방으로 여러 명이 가서 커피를 맛도 모르고 마시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엔디윌리암스와 카펜터스 노래를 신청했다. 다방을 나와서 태어나 처음으로 소주를 마셨다. 세상에나 이렇게나 홍시(紅柿)처럼 달고 맛난 것을 어른들은 어째서 “캬~~하며 쓰디쓴 표정을 지었을까.” 생각하니 사기당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보름에 한번 정도 소주를 마실 때면 서너 잔까지 소주는 달고 그 잔수를 넘어가면 쓰다. 내 소주 정량은 반 병인 듯하다.

4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활 중에서 가장 솔직하고 마음을 열어 재낀 대화나 관계는 대학 1학년 특히 1학기인 것 같다. 학기가 변할 때마다 입학동기들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가끔씩 그리워도 나뭇잎을 스치어가는 바람처럼 그냥 짐짓 모른 채 지나간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며 읊조리는 구절이 있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자기 패(牌)(감정과 생각과 각자의 처지)를 숨기지 않고 다 까는 ‘완존 열린 창(perfect open window)’의 대화와 만남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학 2학년 이후부터 대학원 3년, 박사과정 4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과의 학연(學緣)을 맺었다. 시간이 지나 신문 인사란에 총리 장관 시장 청장 국회의원 대학총장까지 그들 이름이 저명인사로 기록되고 있어도 나에겐 그냥 가을 바람일 뿐이다. 나와의 애잔한 추억 보따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일학년 일 학기를 꿈처럼 친구들과 보냈다. 평생 마신 술의 절 반 이상은 마신 시기였고 밥은 못 먹어도 백원에 세 까치인 담배는 구멍가게에서 사서 피웠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했어도 재미난 시절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다. 대학신문에는 ‘갈대‘라는 시가 마음을 스산하게 했고 코스모스는 바람결에 하늘거렸다. 개강 파티를 한다고 과대표가 설치고 돌아다니는데 한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전주 김제 목포 광주 등 전라도 친구들과 한남동서 소주를 한잔하는데 애기가 흘러나왔다. “그 친구는 정부비방과 욕설 불순한 언동(言動)으로 안기부에 잡혀갔다.”고 했다. 그리고 학과마다 안기부 혹은 경찰과 연계된 어떤 끈, 짭새(지금은 없지만 당시 비밀경찰)가 있으니 말 행동 글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였다. 누구인지 모르는 속에서 아니면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가 혹 짭새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춘애찬은 고사하고 담배 한 대 뽈고 소주한잔 곁드린 따신 얘기하나 주고받을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짙어졌다.

2학년이 되어 편입생들이 예닐곱 들어오고 또 입학동기들 중 예닐곱은 군대를 가고 학교호국단훈련에서는 이상한 분위기가 반복되었다. 자기 패를 하나도 숨김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 때가 그리울수록 대학생활은 암담했다. 맑고 고운 얼굴들, 사는 것은 넉넉하지 못해도 시대에 대한 진한 울분을 간직한 친구, 묵묵히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는 듯한 친구, 그리워도 다가갈 수 없는 순간순간들이 지나가고 그해 10.26., 12.12. 사건이 일어났고 제3한강교의 물결만 무심하게 쉬지 않고 흘렀다.

만나고 싶어도, 딱히 무슨 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한 번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고, 만나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시간이 2020.2.~지금이다.

이상하게도 1970년대 말 대학 일학년 2학기에 내가 겪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도 사람의 관계도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거름처럼 혼자서 외로이 썩어가는 겨울이라는 시간을 견디어야 채마 밭을 살찌게 만드는 영양소가 되지 않는가. 신종 코로나19로 국가재난의 힘든 시기다.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삶의 본원적인 가치를 조용히 부여잡고 조용히 음미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나또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 상황에서 읊조리는 시(詩)가 있다. 가수 박인희가 낭독하듯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 얼굴- 전문(全文)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살면) 무얼(무엇)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밤 내 비가 내리고 /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 손 흔들던 기억보단

간절한 것은 /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 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이 시는 박인환 시로 알려져 있는데 박인환 시집 1973년본과 재편집된 1985년 시집에도 없다. 가수 박인희 작이라는얘기도있고 가수 스스로 그런 주장을 했다는 설도 있다.

해석하면, 

그대와 내가 해와 달을 벗 삼아 지낸 수많은 추억들은 별똥별도 아니고 ‘신기루’도 아니다. ‘먼지 나는 골목길을 돌아나 온 바람’도 아니고 누구인들 선연하게 볼 수 있는 팔랑거리는 '기(旗)'도 아니며 함께 살갑게 지낸 순간(‘꽃’)도 지금은 아니다. 그래도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기다림에 익숙해져버린 ‘외로운 학’으로라도 살면서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을 하렵니다. 모든 추억과 기다림이 마음속에서 영글어도 딱 한마디만 외치고 싶답니다. 보고싶어요.

또 보고싶습니다. 하지만 보고 또 보고 싶어도, 이 감정 이 마음 하고픈 이 한 마디로 혹여 영원히 이별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

2020.3.14. 15:00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