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연재]강박사의 토요 시(土曜 詩) 마음자리
  • 강길봉
  • 승인 2019.12.07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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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처음 감자를 심고 보름 후에 다시 상추씨를 뿌렸다. 씨 뿌리고 50일 지나서 부드럽고 향기 나는 상추를 마주했고, 100일 즈음 주먹 크기의 감자를 캤다.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올랐다. 아하! 야채를 키우고 거두면서 이런 저런 삶의 시름을 달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13년 째 강의 없는 날, 또는 오전에 강의가 끝난 날엔 텃밭에 나갔다. 특강이나 원고 쓰느라 한 사나흘 텃밭에 나가지 않으면 “박사님, 어디 편찮으신 것은 아니죠?”하고 텃밭 주인 할머니께서 전화를 해댄다. 텃밭은 오랫동안 나의 놀이터이고 마음이 쉬는 쉼터가 되었다.

텃밭엔 야채 과수(果樹)도 있지만 밭두렁과 도랑(꼬랑)을 따라 자연스럽게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다. 야채이든 꽃이든 자라고 피는 곳은 다르지만 적당한 기온인 햇볕, 꼭 필요한 만큼의 밝음과 어둠이 조율된 햇볕 달빛, 몇 방울의 물, 뻗고 서고 누울 자리인 그만큼의 흙을 기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있다 해도 하나가 더 없으면 안 된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얼굴에 부빌 수도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람(wind)이다.
바람은 꽃잎 꽃대/줄기 꽃의 묵은 때나 먼지를 날려버린다. 바람이 없으면 꽃의 향기가 퍼지지 않기에 벌과 나비가 꽃에 다가오지 못해 열매 없이 시들고 만다. 바람은 꽃잎을 숨 쉬게 하고 꽃대를 흔들어서 유연하게 굵어지고 단단해지게 하면서 꽃을 받쳐줄 힘을 키우게 한다. 아욱 근대 상추를 아주 배게 심었더니 바람이 스치어갈 만한 틈새도 없이 빽빽하게 자라 모두 썩어서 죽어버렸다. 바람이 없으면 아니 바람을 맞지 않으면 모든 꽃과 야채는 죽음 같은 고요 속에서 썩어 자빠지고 사라진다.

꽃잎과 꽃대가 자라고 꽃을 화려하게 피우게 하고 때론 깜짝 놀라게 해 새롭게 깨어나게 하기 위해 바람이 있어야 하듯, 사람의 삶도 바람과 함께 울고 웃는다.
세계사의 거세고 모진 바람도 ‘은둔의 나라’, ‘동방의 반짝이던 등불’을 비껴가지 않았다. 16세기 이후 거의 300년에 가깝게 세계사를 지배했던 절대주의 혹은 근세국가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그 세가 더욱 확장되었다. 유럽의 전통 강국과 미국, 미국의 신기술로 단련된 일본은 영토를 넓히고 귀하고 값진 천연자본에 시뻘겋게 눈독을 들였다. 그 시기 아세아의 작은 나라 한국은 이들의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세기 말 대한제국은 어쩔도리 없이 문을 열고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1910년에 이들의 야합(野合)에 의해 먹혔다. 피맺힌 절규나 눈물도 죽임에 의해 까맣게 감춰졌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일본으로 가서 붓을 잡았고 또 누군가는 동족끼리 똘똘 뭉쳐 언 주먹밥 먹어가면서 아니 끼니까지 걸러 가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일본놈들과 싸웠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봄날 아지랑이 같은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은 어디로 간 데 없어졌다. 김구 이승만 여운형 신익희 등등을 내세우며 각자의 신념에 의거해 일본놈들을 위해 싸우다 이제 우리들끼리 피터지게 싸웠다. 그러다가 대나무 막대기로 싸우다 무자비하게 총칼로, ‘형과 아우와 애비 어미’가 뜨겁고 따신 같은 피를 가진 우리들끼리 ‘편 가르기’로 싸웠다. 육이오가 터지고 같은 형제자매끼리 악이 받친 듯 또 싸웠다. 얼마나 죽이고 얼마나 죽였는지 헤아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싸웠다. 살기 위해서 누구는 좌익(left)이 되고 또 누구인가는 우익(right)이 되어야만 했다. 아니 어디에라도 주변에 걸치기라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멈칫거리며 서 있어야 했다. 총을 잡고 있는 누군가와 반대편에 있다고 의심을 받게 되면 또 우리끼리 무참하게 죽였다. 누가 옳고 누가 그릇되고를 떠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잊힐 리도 없는 동족상쟁의 비극의 역사,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비극이고 그 비극은 어떤 면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바람은 부는 원인이 있지만 우리들끼리 죽이고 죽은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겠는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그것도 동족 혈육 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데 무슨 정당한 이유가 있겠는가. 애시 당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원인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편 가르기’ 싸움에서 이상하게 찍힌 주홍글씨로 인해 청장년 시절, 분노하고 쓸쓸해 왔던 시인이 있었다. 비둘기와 같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을 꿈꿨던 시인, 식민지와 동족상쟁의 비극의 한가운데 있었던 시인, 1960.4.19.를 목 놓아 외쳤던 시인, 1961.5.16.을 거부했던 시인이다. 군사독재에서 가장 처절하게 자유를 외쳤던 시인이다. 그리고 목포의 김지하 시인, 순천의 김승옥 소설가, ‘세월이 가면’의 박인환 과 ‘명동백작’ 이중구와 절친했던 시인, 그가 김수영(1921-1968) 시인이다.

이번 주 토요 시는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풀>이다. 이 시는 시인이 죽기 전 보름 전에 쓴 시이므로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최후의 시이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다가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비 동풍 흐린 날 등은 종달새가 자유롭게 날고 도요새가 하늘을 치솟고 비둘기가 구구대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압박하는 거세고 모진 바람이다. 총과 대포 등 기계문명,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쟁의 비극과 좌우이념 충돌, 안보를 핑계삼아 인권을 짓 밟는 정부, 빵을 내세워 자유를 뭉개버린 군사정부이다. 모진 바람 속에 풀(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과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민중, 민초)들은 눕고 울고 눕고 울다가 다시 일어나서 살아 볼려고 애쓴다. 해가 뜨고 달이 져도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반복되는 절망의 늪에서도 살아보려고 눕고 일어나고 하도 어처구니없는 정치권력의 감시 구금 탄압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광기의 웃음을 웃다 다시 지쳐서 뿌리 채 스러진다. 뿌리를 잘라도 꼬리짤린 도마뱀처럼 또 일어날 것이다. 거센 바람 속에서 다양한 자세로 살아가겠지만 결코 뽑히지 않고 살아가는 풀꽃처럼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을 않을까 생각해본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yoniso님의 이미지 입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gyoniso님의 이미지 입니다.

김수영의 <풀>이란 시에서 나는 바람은 왜 생기고 나와 우리에게 바람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먼저 바람이란 무엇인가이다. 꽃 이파리를 흔드는 자연의 바람(wind)은 햇볕에 의한 온도 차로 생긴다.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대기 중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원래의 자리는 공기가 적어져 기압이 낮아지고(저기압) 주변의 비교적 차가운 곳에 자리하던 농밀한 공기(고기압)가 그곳으로, 즉 고기압->저기압으로 이동하면서 바람이 생긴다. 비교적 찬 공기가 많아 공기밀도가 높은 곳(고기압; 낮은 바다, 밤에는 육지)에서 비교적 공기가 따뜻해서 공기가 위로 올라가버려 공기 농도가 낮은 곳(저기압; 낮은 육지, 밤에는 바다)으로 이동하면서 바람이 생긴다. 결국 바람은 기압 차(氣壓差)로 인한 공기이동이다.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나 해변으로 밤에는 육지가 빨리 차가워지니 바다로 바람이 향해간다.

기후생태학이나 물리학의 시각에서 바람이 기압의 차이(差異)에서 비롯된 현상이듯 인문사회분야에서도 바람은 차이(差異)에서 비롯된 세상사의 변화양태로 본다. 21세기의 세차고 모진 바람, 광풍(狂風), 세파(世波) 등 거센 바람은 변혁 혁신 창조의 시대, 거대조류(mega –trend), 지식사회(후기정보화 사회), AI와 4차 산업혁명, 네트워크 혹은 거버넌스,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통용되고 있다. 거세고 모진 바람은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어서 뿌리부터 과감한 변혁이 있어야 하고 줄기 가지 잎새에 이르기까지도 바꿔야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칭한다.

타자에게나 사회에 미치는 파급성은 다소 미미할 수는 있으나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인생살이에서 바람은 찻잔속의 폭풍처럼 아프고 시리고 쓸쓸하고 외로운 고민거리나 상처 아픔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맞이해 왔고 “이것은 이렇게 대응하면 되겠구나” 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루틴화된 문제해결기제(SOP; standard operating)라 한다. ’SOP‘의 얼개(frame) 안에서 야기되는 어떤 문제도 숙련된 총잡이처럼 문제해결이 가능해서 몸과 맘의 바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static homeostasis)은 어찌 보면 비일상(dynamic homeostasis)이다. 기후가 다르고 시간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다르다. 엄밀하게 따지만 시시때때로 모든 것은 변하고 있다. 세상의 거대한 변화는 차치하고라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잘 살피는 것도 바람의 변화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지혜이다. 기존에 내가 막닥뜨렸던 것과는 다른 바람은 나에게 불균형과 불안정을 준다. 맘과 감정이 뒤뚱거리게 되고 적응력 부족으로 무력감을 일으킨다.

뭔가를 고민한다는 것은 바람 속에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장과 학과장이 바뀌거나 조직사회에서 젊고 스마트한 대체인물이 많아지면서 나의 존재감이 현저하게 떨어질 때, 호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과감하게 질러대던 호기(豪氣)를 죽여야 하는 현실, 자식이 결혼을 하고 사위가 생기고 손녀가 생기면서 나의 일정을 변경해야 할 상황이 많아지고 집안일의 대소사에서 결정하고 말하는 시간보다 지켜보고 들어야 할 시간이 많아지는 상황, 얌전하고 조용히 듣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이 말이 많아지고 거세지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오랜 동반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일터에서 멀어지고 난 후, 집안의 오랜 권력자와 상생(相生) 아니 공생이나 기생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집안 일 중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만 좋아할까. 퇴직 이후 집안에 있는 시간을 가능한 줄이고 적어도 이틀이나 삼일 이상은 밖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낼까. 살아온 세월만큼보다 몸과 맘은 더 빨리 늙어 가는데 이 몸과 맘은 또 어떻게 추슬러야 될까. 술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귀는 열(open)라고 하는데 그게 하루 이틀에 될 일인가. 등등이 내가 새로운 바람 속에 있는 증거이다.

몸과 맘을 상할 만큼의 지독한 고민, 즉 바람은 극복하지 말고 36계 즉, 피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진단하고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바람은 맞이해야만 한다. 내 몸과 맘 속에 일어나는 바람을 아는 것은 건강한 자아를 위해 긴요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떻게 서 있으며 어디만큼 걸어가고 있는지, 나아가서 어떻게 해야만 하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 자기 정체성(self identity)을 확인하고 키워가는 게 건강한 삶이다. 의식과 마음 밭을 갖고 있으면서 마음과 몸이 이는 바람을 차단하는 것은 뇌경색이나 치매에 가깝다고 본다. 건강한 바람은 피하지 말고 맞이해야 한다. 한 번도 싸움을 하지 않는 부부는 서로를 대화조차 할 가치가 없는 존재, 요즘말로 ‘개무시‘하는 상태라고 한다. 서운 한 것이 있으면 얘기를 하고 말다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비바람이 없는 야채나 풀과 꽃은 깨끗하게 묵은 떼를 벗겨낼 수가 없고 맑은 숨을 쉴 수가 없으며 줄기와 대가 유연하면서 강하게 자라지 못한다. 결국 썩어 자빠진다. 우리 각자의 몸과 마음의 변화바람에 유념하면서 건강한 고민 눈물 안타까움 등 살아있는 마음밭을 일구시길 바란다.
2019.12.7. 10:45 강길봉 드림


강길봉

강길봉 박사
강길봉 박사

약력:
* 순천 태생, 순천매산고/단국대 법대(5.16 장학생)/고려대 대학원 졸(행정학석사/박사)
* 고시학원 강의(종로/노량진/신림동 24년)
* 고려대, 서울시립대, 행정안전부, 광운대 강의(외래/겸임/강의전담교수)
* 최신행정학(육서당,2000, 20판), 최신행정학(새롬, 15판) 행정학개론(21세기사,2019), 외 저서 및 논문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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