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7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용산구,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200부 발간 용산구,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200부 발간 서울 용산구(구청장) 용산문화원이 용산기지 내 단일 역사문화유산을 다룬 최초 학술연구 성과로 ‘용산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책자를 200부 발간했다. A4사이즈(210㎜x297㎜), 176쪽 분량이다. ▲사진·지도·도면으로 본 용산위수감옥 ▲용산위수감옥 역사 연표 ▲논고 ▲자료 순으로 편집했다. 용산위수감옥은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미군 주둔기 역사를 한 번에 살필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다. 일본군이 설치한 위수감옥(군인, 군속들을 가두기 위해 만든 군 감옥) 중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체가 남아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지난 서울 | 장은영 기자 | 2021-12-16 08:08 용산구, 30일 용산위수감옥 학술심포지엄 용산구, 30일 용산위수감옥 학술심포지엄 의병장 강기동, 장군의 아들 김두한, 박헌영의 비서 박시현, 남로당 조직책 이중업...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일본군이 만든 ‘용산위수감옥’을 거쳐 갔단 사실이다. 시대마다 이름은 달랐다. 위수감옥, 미 제7사단 구금소, 육군형무소 그리고 해당 건물은 지금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용산 미군기지에 자리하고 있다.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 용산문화원이 30일 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용산위수감옥(이하 위수감옥)의 역사를 찾아서’ 학술심포지엄을 연다.행사 장소는 용산문화원 3층 대강당이며 코로나19 상황을 감안, 참석인원을 제 서울 | 장은영 기자 | 2021-10-27 08:19 용산구, 미7사단구금소 김두한 수감 문건 최초 발굴 용산구, 미7사단구금소 김두한 수감 문건 최초 발굴 1947년 4월 20일 남산 옛 동본원사(東本願寺)에 거처를 두고 있던 김두한(1918-1972) 등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민청) 소속 우익테러대원들이 반대파인 정진룡 일당을 폭행·살인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물론 단순한 폭력 사건이 아닌 좌우익의 정치적 무력충돌이었다.당시 신문기사 등에 따르면 미군정기 대북첩보·정보수집·정치인 사찰을 주도했던 미군 방첩단 씨아이씨(CIC)가 사건을 수도경찰청에 알렸고 장택상 청장이 직접 수사를 지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주검 1구와 부상자 10명이 발견됐다.이 사건으로 인해 김두한은 구속돼 서울 | 박정이 기자 | 2020-11-03 07:39 용산구, 미군기지 내 용산위수감옥 보존·활용방안 모색 용산구, 미군기지 내 용산위수감옥 보존·활용방안 모색 용산위수감옥. 군형법을 어긴 일본군인, 군속들을 가두기 위해 일제강점기 서울 용산에 주둔했던 일본군 제20사단이 기지 내 건설했던 군 시설이다. 1909년 준공 후 11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에 건물 일부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 용산문화원이 27일 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용산위수감옥(이하 위수감옥) 역사성·장소성 규명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근대 역사문화유산으로서 위수감옥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존, 활용하기 위해서다.이날 행사는 내빈소개, 인사말, 주제발표, 패널토 서울 | 박정이 기자 | 2020-06-29 07:33 성장현 용산구청장, 의병장 강기동 선생 후손과의 면담 성장현 용산구청장, 의병장 강기동 선생 후손과의 면담 용산구에는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애국선열들이 많다.성장현 용산구청장이 8일 구청장 집무실에서 의병장 강기동(1884-1911) 선생 손자 강신규씨와 면담을 했다.강기동 선생은 경기도 포천, 양주 등에서 활약한 의병장으로 1911년 2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됐으며 서울에서 조사를 받고 용산 군사령부 군사재판에 넘겨졌다.당시 선생은 일본군 ‘위수감옥’에 수감됐다가 순국한 것으로 보인다. 감옥은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 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성장현 구청장은 "구가 최근 강기동 선생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유손과 연락이 서울 | 박정이 기자 | 2019-05-09 09:02 용산구, 의병장 강기동 선생 재조명 용산구, 의병장 강기동 선생 재조명 "달포 전에 서울로 압송돼 조사를 받고 용산 군사령부 군법회의에 부쳐졌던 적괴(賊魁) 강기동은 (중략) 보병 65연대 병사 3명으로 하여금 포형(砲刑:총살형)을 거행케하였는데 불과 한 발에 왼쪽 이마를 관통하여 봄풀의 한 점 이슬이 되었다더라” 1911년 4월 19일자 매일신보 기사 ‘강기동의 포형’ 중 일부다.서울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이달 구 소식지 ‘용산구소식’을 통해 의병장 강기동(1884-1911) 선생을 재조명, 눈길을 끌었다.강기동 선생은 1884년 서울 명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서울 | 데일리메이커 | 2019-04-16 08:53 처음처음1끝끝